[ 시가 있는 아침 ] - 세속도시 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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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환자실에 들어간 수술 의사가

오 분 만에 씩 웃고 나와 고무장갑을 벗고

초록빛 수술 가운을 벗었다

세상에 가장 손쉬운 수술이었노라고

그는 손을 씻으며

소리 나게 코를 풀었다

회복실로 들어간 환자를 따라 보호자들이

우르르 쥐 떼처럼 몰려 들어갔다

환자는 대형 거울 앞에 늠름하게 서 있었다

그의 복부에는 쓸개도 없었고

간도 없었고 아아, 안면도 없었다

환자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정치가였다.

슬프다. 간도 쓸개도, 심지어 안면도 없는 중환자가 어디 우리나라 정치인들뿐이랴. 이제는 국민마저도 그들을 닮아 중환자의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예전에 국민은 '네 편 내 편'으로 나누어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어느 집단이든 꼭 두 쪽으로 나누어지고 갈라진다. 마치 어릴 때 모든 인간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과 똑같다. 왜 자꾸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나누어 국민 간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분열의 틈이 더 벌어지는가. 이것과 저것이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이 되면 안 되는 것인가.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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