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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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워낙 번거러운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 김인9단(39)은 입신한 후 여러곳에서 축하인사와 면담요청이 들어오자 『더 좋은 바둑을 두라는 격려로 생각한다』 는 말을 남긴채 한국기원기사실에 모습을 잘 나타내지 않아 만나기가 어려웠다. 한국 기원측에서도 김9단의 그러한 면모를 잘 아는지라 공동기자회견이라도 준비하여 번거러움을 덜어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눈치었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
11일은 마침 공식대국이 상오10시부터 있어 바둑판을 대하기 전에 잠시 틈을 얻어 마주 앉았다.
『10세 전부터 바둑을 두어 이제 불혹을 앞두고 입신이라는9단이 되었습니다. 한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조그만 성취감을 느끼고 있으며, 기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나자신이 이루어내고 있는 바둑의 내용이 입신이라는 말에 합당할 만큼 성숙됐느냐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인데 지금의 심정은 더 좋은 바둑을 두어야할텐데 하는 쪽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김9단은 말수가 적다고 한다. 한국기원동료기사들은 그의 말이 그의 마음속에서 걸러서 나오고 있으며 그래서 깊은 속마음을 전달해 주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잔잔한 미소를 띠면서 입신 소감을 말하고 있는 김9단의 모습에서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남철8단의 뒤를 이어 김9단은 60년대 중엽부터 70년대 초까지 한국기계에 군림했고 또 기계를 발전시켰다.
지금은 다소 슬럼프여서 타이틀을 차지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각종 기전의 본선에 올라 활약하고 있다. 지금 한국 기원기사회장을 맡고 있는 것이 말해주는 것 처림 기계의 중진으로서, 또 힘있는 바둑을 두는 한사람의 기사로서 그는 좋은 바둑을 두어 패기 있는 젊은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승부사는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기느냐가 중요합니다. 끊임없이 정진하여 자기가 이루어놓은 바둑의 세계를 가지고 딴 사람이 이룬 것과 겸허하게 맞서는 것, 거기에 프로바둑의 진수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김9단은 자신의 기풍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한다. 프로기사하면 누구나 기풍을 갖고 싶겠지만 김9단의 이 말은 「프로기사가 자신의 기풍으로서 반상의 승부를 초월하는 승부를 생각하는」 그러한 경지까지를 생각하게 한다.
실리보다는 세력을 중요시하는 두터운 바둑을 둔다고 하는 그의 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될지 궁금하다.
기사회장으로서 생각하는 한국기계의 발전방향은….
『기사들이 바둑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빨리 조성되어야겠고 기사들도 더 정진하는 노력이 있어야겠지요
「입신」 으로서 아마추어 바둑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우선 즐기면서 대국적으로 보는 것, 깊은 수를 읽는 것, 인내심을 갖는 것등을 생각해 주셨으면‥·.』
중후한 인상의 김9단은 미소를 띠며 말할 때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두주를 부사했으나 요즈음은 주량이 조금 줄었다. 그러나 한국기원주변의 주점에서 담소를 즐기는 그의 모습은 종종 발견된다.·
건강을 위해 주말이면 등산을 자주 떠난다. 미혼이다.<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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