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받은 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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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금년 학교에 들어가며 서울로 이사를 하는 큰딸애의 친구가 그동안 쓰던 필통을 물려 주었다. 아직 한해를 더 기다려야 학교에 갈수 있는 딸아이는 늘 언니라고 부르며 같이 유아원에 다니고 같이 놀고 잠자는 시간외엔 거의 매일 같이 지내다 처음으로 겪어보는 헤어짐이라고 할까. 가끔은 토닥거리며 싸우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어른스럽게 언니노릇을 잘해주던 친구와의 헤어짐이 아이의 작은 가슴에는 어떤 의미로 새겨졌는지 모르지만 딸아이는 필통을 물려받은것만이 신나고 즐겁다. 『이거 미현이언니가 쓰던 건대 언니는 학교에 가서 나 주었어요.』
딸 아이는 보는 사람마다 자랑을 한다.
『그까짓 헌것 무엇이 좋다고 그러니. 엄마보고 새것 사달래지.』
동네아줌마가 어떻게하나 보려고 그렇게 놀리자 『아줌마는 새것만 알아요? 언니가 쓰던것 물려주는게 더 좋은 것이예요.』
딸아이는 정색을하며 반박을 한다. 동전 몇개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즈음 아이들에게 동전 몇개면 예쁜 새 필통을 살수있지만 좋아하는 언니가 특별히 자기에게 물려주었다는 소중한 마음을 아이는 알고 있었다. 물질만능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은 먹고 싶은것, 갖고 싶은것에 별로 어렵고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것같다. 무엇이든 새것과 비싼 것이 좋은 줄 아는 아이들 가슴에 따뜻한 정성과 소중한 마음이 더욱 값지고 귀하다는것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 헌 필통을 받고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대견한지.
이다음 어른이 되어서도 여섯살때 받은 이 소중한 선물을 기억해 주길 바라고 싶다.
『원주야, 언니가 내년에 학교가면 이 필통 너 줄께』하며 딸 아이는 제 동생한테 다짐을 한다.

<경기도양주군회천면덕정리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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