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여론·단체 내세워 사법부 흔들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최종영 대법원장이 6년 임기를 마치고 어제 법원을 떠났다. 그는 퇴임사에서 "여론이나 단체의 이름을 내세워 재판의 권위에 도전하여 이를 폄하하려는 행동이 자주 생겨나고 있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사법 절차 외의 방법으로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면 사법부의 존엄을 해하고, 결국 법치주의의 근간을 위태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권위 훼손에 우려를 표시한 것은 최 대법원장뿐이 아니다. 김영일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지난 3월 퇴임할 때 "헌재 결정을 폄하하고 지각 없는 행위를 자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진정 나라를 위하고 헌법을 수호하며 국민 의지를 대변하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강병섭 전 서울중앙지법원장도 지난해 8월 법원을 떠나며 "개혁성과 진보를 내세운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의견이 법원에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은 사법부의 심각한 위기"라고 경고했다.

현 집권세력과 시민단체 등의 사법부 때리기는 지난해 10월 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헌재의 위헌 결정을 계기로 노골화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기관의 성격상 보수성향일 수밖에 없는 사법부의 인적 구성에 대한 깊은 불신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물론 형평성을 잃은 재판 등은 사법 불신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부패 정치인 등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은 재판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다. 그러나 지금 사법부로부터 나오는 염려는 이러한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사법부 전체를 특정 세력권이 지배하려는 분위기인 것이다. 법정에서 고함을 지르는가 하면 무거운 형이 선고된 경우 재판부를 향해 욕설을 퍼붓는 등의 행동들도 이런 분위기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최 대법원장의 지적대로 사법부의 권위가 훼손된다면 우리 사회의 버팀목인 법치가 흔들리고 민주주의는 폭민주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법치를 위해선 어느 누구든 사법적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아울러 법원 구성원들도 사법권의 독립은 스스로가 지켜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