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성과"→"부실투자" 자원외교 고무줄 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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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해외 자원개발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브랜드 가치를 제고시키고 시장 경쟁력의 기반을 마련….”(2012년 4월 13일)

 “손실 부담이 공사 전체로 전이·확대되고 있다. 부실한 투자사업을 정리해야 한다.”(2015년 1월 2일)

 한국석유공사가 2009년 10월 캐나다의 에너지기업 ‘하베스트’를 인수한 데 대한 감사원의 평가는 2년9개월 만에 이렇게 달라졌다. 감사원은 지난 2일 하베스트 인수로 1조33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끼친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산업통상자원부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라고 통보했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였던 ‘자원외교’ 실패를 이유로 공기업 경영진에게 감사원이 법적 책임을 물은 첫 사례였다. <중앙일보 1월 3일자 4면>

 문제는 감사원의 강력한 조치가 왜 정권이 바뀐 뒤에야 나왔느냐다. 감사원은 2012년 석유공사를 감사하면서 이미 하베스트 문제를 다뤘다. 당시 “하베스트 등 해외 대형 석유기업과의 인수합병(M&A)으로 석유공사가 일일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70위권(2007년 90위권)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일단 긍정적 평가를 했다. 그런 뒤 “지분을 인수하면서 자의적으로 경제성 평가를 했다”며 “(기업) 가치를 실제보다 2억7900만 캐나다 달러만큼 과다 평가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2억7900만 캐나다 달러(당시 환율로는 3086억원, 최근 환율로는 3133억원)는 감사원이 이번에 강 전 사장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단서로 제시된 숫자다. 감사원이 2년9개월 전에 이미 핵심 문제점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같은 사안에 대한 감사원의 판단은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졌다. 2012년 이 전 대통령 때는 당시 실무를 담당한 인수합병 사업팀장을 ‘정직(停職)’ 처분하라는 징계 요구가 유일한 문책이었다. 경영진 중에선 부사장이 감독을 게을리했다는 이유로 인사자료를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통보한 게 전부였다.

 그러다 2년9개월이 흐른 지난 2일에는 강 전 사장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강수를 뒀다. 감사원 관계자는 “2012년 감사 때는 강 전 사장이 현직에 있다 보니 사장이 개입한 사실을 철저히 숨겨 밝히지 못했다가 이번에 진상을 다 알게 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감사원의 이런 행태는 반복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또 다른 핵심 사업인 4대 강 사업 때도 마찬가지였다. 감사원은 2011년 1월 “4대 강이 과거보다 홍수에 더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했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한 2013년 7월에는 “4대 강 사업은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추진됐다”며 ‘총체적 부실’이란 진단을 내렸다.

 중앙대 손병권(정치학) 교수는 “우연일지라도 이런 일이 반복되면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 고 말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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