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유느님’ 이라 불리는 사나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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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각종 포털 사이트에 ‘유재석’ 이름 석자가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순간 사고라도 쳤을까하는 염려가 되었다.

검색어 상위권,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 다반사인 세태이니 반사적으로 검색을 했다. 지상파 방송3사의 방송대상을 휩쓸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였다. 해마다 연말이면 나오는 얘기다. 각별한 사이도 아닌데 먼저 염려가 되었을까? 인연이라곤 두어 시간 남짓 인터뷰 후에 이어진 사진촬영이 전부 일뿐이다. 그런데 그 두어 시간의 인연이 반사적으로 검색을 하게끔 했다.

2013 백상 예술대상 수상을 계기로 어렵사리 성사된 인터뷰였다. (인터뷰 안하기로 유명(?)하다. 당시 취재기자의 인터뷰 성사 통보에 정말이냐고 되물었다. 2005년 이후 정식 인터뷰는 처음이라 했다.)

모 방송국 출연자 대기실, 하늘색 찜질방 옷차림에 뽀글 머리 가발을 쓰고 혼자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쫙 빼입거나, 스타일리스트를 대동하고 등장하는 연예인 인터뷰와는 다른 만남이다. 적어도 멋 부리며 사진을 찍히기 위한 마음이 없다는 것일까?

“반갑습니다. 기자분들 쉬는 토요일에 뵙자고 해서 죄송합니다.” 기자의 대부분이 토요일에 쉰다는 것을 미리 알고 첫인사를 건넨다.

“옷을 따로 갈아입고 분장과 머리를 다시 만져야하는 시간이 여의치 않은데 이 차림으로 사진 찍어도 될까요?” 하고 인터뷰 시작 전 조심스럽게 묻는다. 녹화 중 짬을 내어 한 시간 반 정도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하기로 약속이 된 상태다. 머리 만지고 분장하고 옷 갈아입으면 족히 삼십 분은 그냥 허비한다.

“인간 유재석을 알아보기 위한 인터뷰이니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형편 닿는 대로 하시죠.”라는 답에 고맙다는 인사를 빼먹지 않는다.

그렇게 이어진 인터뷰. ‘대학개그제’에서 장려상에 만족 못하고 상 받으러 나가면서 심드렁하게 손가락으로 귀를 팠을 정도로 뭘 모르던 데뷔시절. 7~8 년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탓하며 허송세월한 긴 무명시절. 개인기, 인물, 카리스마, 유행어도 없는 ‘4무(無) 예능인’으로도 활발히 활동하는 요즘. 그리고 어린 시절, 가정생활, 향후 계획 등 묻는 대로 시시콜콜 답하다 보니 인터뷰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버렸다.

두어 시간 인터뷰 내내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교무실에 불려간 학생 자세다. 왜냐고 물었다. “허리가 안 좋아서 바르게 앉는 연습을 계속했을 뿐”이라며 씩 웃을 뿐이다. 네 시간 녹화 후 쉼 없이 이어진 인터뷰까지 거의 여섯 시간의 바른 자세, 쉽지 않은 일이다.

인터뷰 후에 곧 바로 이어진 사진 촬영. 거울 한번 보지 않고 바로 시작했다. 귀 파는 모습, 튀어나온 이빨, 가발 속의 눌러진 머리, 안경 너머의 작은 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했다. 거부감이들 요구에도 다 보여준다. 적나라하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남에게 보여주는 일, 일반인도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요즘 웬만한 연예인들은 만나자 마자 포토샵을 요구한다. 그러나 유재석, 적나라한 모습 다보여주고도 유쾌해한다.

촬영 후 카메라 장비를 챙기는 사이. 조명 가방이 사라졌다. 누가 훔쳐가라고 해도 안 가져 갈 정도로 무거운 가방이다. 후다닥 방송국 출입문을 나서니 유재석과 그의 매니저 둘이 나란히 가방 하나씩 들고 이미 방송국 바깥으로 나섰다. 오가는 인파가 제법 많은 큰길, 찜질방 옷차림 그대로다. 그리고 취재기자와 이별의 포옹. 이 모든 것, 꾸밈없는 것일까 아니면 꾸민 것일까? 판단할 수 없다. 다만, 두어 시간의 만남에도 사람의 마음을 훔치건 사실이다. 방송가에서 그가 ‘유느님’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겠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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