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망신주기식 국감 증인 채택 문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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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야가 22일 시작되는 국회 국정감사의 증인 채택 문제를 놓고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상대 당의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하자고 하는가 하면 노무현 대통령을 증언대에 세우겠다고 나서는 의원도 있다.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금도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발단은 문화관광위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을 증인으로 채택하자고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 정수장학회 설립 의혹과 서울 상암동 골프장 운영 문제에 대한 증언을 듣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를 야당의 대선 예비 주자들에 대한 흠집내기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한나라당은 옛 안기부 불법 도청사건과 관련해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낸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과 이강래 의원을, 대선 때 기양건설 비자금 수수 의혹을 조사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을 증언대에 세우자고 맞받아쳤다.

문제는 이런 증인 채택 논란의 결말이 뻔하다는 데 있다. 상대 당 대표나 의원들, 또 대통령을 증인으로 세울 수 있겠는가. 망신을 주기 위한 정치 공세용이거나, 상대방 공세에 대비한 방어용 내지 협상용이거나, 충성 표시용으로 떠드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거론되는 당사자의 입장을 생각해보라. 인격 살인을 당하는 기분일 것이다. 마구잡이 증인 채택 논란을 벌여서는 안 되는 이유다.

국감의 본질을 넘어선 증인 채택도 문제가 있다. 문광위가 국가대표 축구팀의 부진과 감독 경질과 관련, 축구협회 관계자를 국감 증인으로 채택한 것은 스포츠에 정치가 개입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둘러싼 논쟁도 국감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더구나 한 야당 의원이 노 대통령과 형 건평씨 등 친인척을 증인으로 신청한 것은 증인 논란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같은 당의 강재섭 원내대표가 "정치를 희화화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망신주고 흠집 내려는 증인 채택은 당장 그만둬야 한다. 절제와 게임의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정치판은 시정잡배의 싸움판과 다름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