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소한 정부」재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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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기구와 정원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한다는 정부의 방침은「간소한 정부」의 실현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지난 20여 년간 여러 차례 정부 스스로 예산절감, 정부의 간소화를 강조해온 점올 기억하고있다. 그러나 그것이 재정운용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된 경험은 거의 없었다. 그 동안 경제가 팽창기에 있었고 정부의 기능과 역할이 급속히 확대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것이 어려웠던 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정부·민간 가릴 것 없이 걷잡을 수 없는 팽창기에 흔히 빠지기 쉬운 오류, 즉 비 능률과 낭비 또한 더 이상 국민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서 경제 각부문의 효율과 생산성이 문제의 핵으로 부각되어있다.
정부가 경제개발을 주도한다는 명분 때문에 정부와 민간이 해야할 일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정부부문의 지나친 비대화와 낭비가 두드러진 것도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총무처가 주관하고 있다는 정부기구 간소화 작업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구두 탄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은 누적된 정부부문의 낭비와 비효율을 더 이상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5차5개년 계획의 가장 핵심이 되는 과제가 다름 아닌 경제의 능률화와 민간영역의 확대에 있는 것도 이런 경제적 한계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80년대의 세계경제는 발전단계에 상관없이 모두가 경기하강과 생산성의 장기적 저하추세에 직면해 있다. 이는 곧 경제 각 부문의 효율, 생산성의 저하와 연관되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세계적 추세는 필연적으로 간소한 정부, 재정의 효율화를 요청하고있다.
안으로도 우리경제는 정부와 민간의 새로운 기능분담의 실점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제개발과 관련한 방대한 자원배분 권을 정부가 직접 행사함으로써 빚어진 갖가지 병폐는 접어두고라도 정부기능의 계속적 비대화를 뒷받침하는 민간의 여력이 한계에 달한 점을 지나칠 수 없다.
GNP의 20%에 가까운 재정부담률이 이제 민간의 가용재원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재정의 90%이상을 조세에 의존하게된 재정구조 또한 이 같은 압박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따라서 간소한 정부를 실현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단순한 예산절감의 차원을 넘어 80년대 이후 정부가 맡아가야 할 본원적 기능과 부차적 기능을 순차적으로 재정립하고 민간의 영역에 맡겨야할 부분을 과감히 이양하는 근본적 기능분담의 기준에서 다루어져야할 문제라고 본다.
문제를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총무처의 작업은 일과성 개편이 아니라 보다 신중히 장기적인 안목에서 전문가들의 협의를 거쳐야할 것으로 보인다. 1만3천여 개에 달하는 정부기능을 총괄적으로 경제발전 단계에 걸맞게 재검토하는 일은 행정관료들만의 평가에 맡길 수 없는 일이며 각 관계부처들도 기득권과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전진적 자세로 이 획기적인 정부간소화 작업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경제개발 우선 시대에 빠지기 쉬운 비대화의 타성을 과감히 개선하고 새로운 사회적 수요인 사회개발과 환경, 교육, 사회간접자본에 치중하는 재정기능의 전환도 아울러 고려하는 포괄적인 정부기능의 재정립이 이번 기회에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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