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주가지수 신기록 박수만 칠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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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종합주가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경제가 온통 어렵다는 판에 한 가지라도 나아지는 경제지표가 있다는 것은 일단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주가지수가 오른다고 마냥 기뻐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오히려 작금의 주가 상승은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낸 것이어서 걱정이 앞선다.

우선 최근 주가 상승은 기업들의 실적이 갑자기 좋아졌거나, 성장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기본적으로 시중의 넘치는 유동성이 큰 몫을 했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억누르자 400조원이 넘는 부동자금의 일부가 증시로 흘러들어오면서 주가를 끌어올렸다는 얘기다. 주가가 실물경제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나 홀로 호조'를 계속할 수 있는 이유다. 그나마 주가가 오른 것은 일부 우량 종목뿐이다. 주가에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매수세가 몰리는 우량종목들은 유통되는 물량이 적다. 이들 주식은 조금만 거래돼도 큰 폭으로 오르게 돼 있고,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종합주가지수는 덩달아 올라간다. 주가지수가 안고 있는 수치상의 착시현상이다. 종합주가지수가 오르면 우량주식을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나 일부 기관투자가는 웃는다. 그러나 일반투자자들의 손에는 남는 게 없다.

국내 증시는 이미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기업들은 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보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시장에서 주식을 거둬들이기에 바쁘다. 증시는 이제 외국자본의 머니게임 놀이터가 돼버렸다. 이러니 주식시장과 국민경제의 괴리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주가 상승을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는 징표라고 내세우는 대통령의 경제 인식에 동의하기 어려운 사정이 여기에 있다.

주가지수가 조금 올랐다고 박수 칠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실물경제를 탄탄하게 살리는 게 우선이다. 그런 다음 증시를 기업자금 조달과 건전한 투자의 장(場)으로 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전반적인 기업 환경의 개선과 함께 기업이 경영권에 대한 불안감을 털고 주식발행을 늘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