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서 스피드로 … '여왕 박승희' 무한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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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희가 지난 10월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역주하고 있다. 박승희는 쇼트트랙에서 전향한지 3개월 만에 국가대표가 됐다. [중앙포토]

2014년 스포츠계 새뚝이들은 평생 누려도 될 만한 업적에 안주하지 않고, 변변찮은 스펙에 주눅들지 않은 사람들이다. 박승희는 올림픽 쇼트트랙 챔피언이라는 영예에 만족하지 않고 스피드스케이팅이란 새 영역에 도전했다. 프로야구 서건창과 아시안게임 축구 이광종 감독은 무명의 설움을 뚫고 뛰어난 업적을 이뤘다. 김효주도 여자골프의 신기원을 연 선수다.

“정상에 오른 뒤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도전해보고 싶었다.”

 지난 10월 30일,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한 박승희(22·화성시청)는 당당했다. 1000m에서 ‘빙속 여제’ 이상화(25·서울시청)에 이어 2위에 오른 박승희는 실력으로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가 됐다.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지 석 달 만이었다.

 박승희의 집안은 스케이트 명문가(家)다. 언니 박승주(23·스피드스케이팅)와 남동생 박세영(20·쇼트트랙)이 모두 국가대표를 거쳤다. 박승희는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가 됐고, 고3이었던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동메달 2개(1000·1500m)를 차지했다. 그해 3월 세계선수권에서 첫 개인종합 우승을 거둔 박승희는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스타로 성장했다.

 박승희는 지난 2월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쇼트트랙 2관왕(1000m·3000m 계주)에 올랐다. 500m에서는 두 차례나 넘어졌지만 이를 악물고 끝까지 달린 끝에 동메달을 따냈다. 앞만 보고 달려온 그는 올림픽 2관왕에 오른 뒤 고민이 생겼다. 스물두 살 나이에 세계 최정상에 서자 다음 목표를 설정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박승희는 “은퇴도 진지하게 고려했다. 내가 좋아하는 패션 분야를 공부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15년 동안 타왔던 스케이트화를 벗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박승희는 이때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시선을 돌렸다. 언니 박승주는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각오가 돼 있으면 한번 도전해 보라”고 격려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박승희를 설레게 했다. 그는 “걱정보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과정은 힘들지만 재미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쇼트트랙 여왕’이 ‘스피드스케이팅 루키’가 된 것이다.

 링크 한 바퀴가 111.12m인 쇼트트랙과 달리 스피드스케이팅은 한 바퀴가 400m다. 순위경쟁을 하는 쇼트트랙과 기록경쟁을 하는 스피드스케이팅은 훈련 방식과, 쓰는 근육이 전혀 다르다. 다른 게 많아서 박승희는 더 신났다. 그는 뛸 때마다 기록을 단축했다.

 박승희의 전향을 도운 조상현(26) 코치는 “승희는 하루 8시간의 강훈련을 잘 소화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먼저 물어보는 적극적인 자세가 좋다”고 말했다.

이상화는 “승희는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다. 경험만 쌓으면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며 응원했다.

 박승희는 체중·근육량·허벅지 두께를 늘리며 스프린터로 변신 중이다. 500m 기록을 두 달 만에 2초25(41초00→38초75)나 끌어내린 박승희는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도전 자체를 즐기겠다”고 말했다.

김지한 기자

◆새뚝이=기존의 장벽을 허물고 새 장을 연 사람을 말한다. 독창적인 활동이나 생각으로 사회를 밝히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 또는 단체다. 중앙일보는 1998년부터 매년 연말 스포츠·문화·사회·경제·과학 분야에서 참신하고 뛰어난 성과를 낸 이들을 새뚝이로 선정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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