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 무대뒤 분장실서 받은 귤 한봉지에 정초느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모두들 잠이 든 세밑 한밤중에 포스터를 붙이는 작업에 들어갔다. 한산배님은 졸린 나머지 풀통을 놓아두고 풀뚜껑만 들고 와 모두 오던 길을 되돌아 가야만 했었다. 거리는 온통 신정연휴 탓으로 썰렁하기만 했으나 미친사람 널뛰듯이 뛰어도 돌아보는 사람이 별로 많지않은 무대를 위해서 부지런히 분장을 서둘러 마치고, 지우고, 또 정성껏 분칠을 하면서 바쁜 3일을 보냈다.
신정공연 『마지막 종말을 위한 협주곡』은 젊은층 관객으로 연일 객석이 만원이었다. 「주리」역으로 분장하고 무대에 올라서고 보니 객석 구석구석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모습이 눈에 띄어 잊어버렸던 신정기분이 새삼 전해졌다.
밤 7시공연을 위해 무대뒤에서 부지런히 분장을 서두르고 있을때 손님 한분이 귤 한봉지를 내밀며『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라고 인사를 건넨다.
문득 모두가 쉬고 있는 정초란 생각에 가슴이 썰렁하기도 했으나 무대라는 또다른 인생의 연출을 위해 휴일을 지나쳐온 동료들 생각에 가슴뿌듯함을 느꼈다. 다양한 성격을 표현할 수 있는 연극배우가 될 수만 있다면 앞으로의 신정도, 구정도 모두아낌없이 관객에게 바치고 싶을 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