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神'의 대마를 잡아버린 김주호의 괴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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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37기 왕위전 본선리그 제3국
[총보 (1~123)]
白·曺薰鉉 9단| 黑·金主鎬 3단

조훈현9단의 대마가 죽었다. 바둑은 1백23수의 단명국으로 끝나버렸다.

曺9단은 그 옛날 40여수만에 돌을 던져버린 적도 있는데 그때는 너무 빨리 던져 구설수에 올랐다.

하지만 曺9단이란 사람은 대체로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형이다. 바둑사를 더듬어 볼 때 曺9단처럼 기적적인 역전승이 많은 사람은 없다.

숱한 큰 승부에서 기막힌 역전승으로 우승까지 차지하곤 했던 曺9단에게 중도에 던진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포기'로 비춰졌을 가능성도 크다.

그런 曺9단이 불과 1백23수만에 던졌다는 것이 놀랍다.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꺼지는 기적이 일어나도 이판은 뒤집히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전투의 귀신으로 꼽히는 曺9단을 맹폭해 대마를 잡아버린 19세 김주호의 괴력이 새삼 가슴 서늘하게 다가온다.

대마가 죽어버린 백의 비극은 초반의 두 수로부터 싹텄다.

우선 22로 귀를 차지한 수. 이 수로 인해 25의 요소를 당하고 말았는데 22부터 25까지를 옮겨놓은 것이 '참고도1'이다.

'참고도1'에서 보면 이 바둑은 참으로 넓게 형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큰 곳이 많다는 얘기다.

그 중에서도 좌변 백 세력을 감안할 때 흑4의 곳은 절호의 한수임을 바로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백1은 작고도 좁다. 게다가 후수.

두번째는 曺9단의 실수라기보다는 金3단이 잘 둔 대목이다. 실전 43의 치중수를 말하는데 그 수가 바로 '참고도2' 흑1이다.

이 치중수가 성립함으로써 크게 타격을 입은 曺9단은 부득이 옥쇄를 각오하고 거친 백병전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힘들게 판을 꾸려가던 백을 좌절시킨 수순이 바로 77~83까지의 맥점이다. 이 수순이 결정타가 되어 金3단은 曺9단의 대마를 함몰시키며 시원한 첫승을 거뒀다.

123수 끝, 흑 불계승.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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