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휴가비 170만원 "동전으로 가져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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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인천의 한 선박회사가 퇴직 직원의 유급 휴가비 170여 만원을 10, 50, 100원짜리 동전만으로 지급하자 이를 들고가지 못해 인근 경찰지구대 무기고에 보관하는 해프닝이 빚어졌다.

H사 소속의 예인선 기관장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3월 퇴직한 정모(63)씨는 회사 측에 밀린 유급 휴가비 170여 만원을 정산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근로 계약 당시 '휴가비와 퇴직금은 연봉에 포함한다'고 명문화했다"며 유급 휴가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정씨는 인천해양수산청에 두 차례 진정서를 낸 끝에 퇴직 후 1년5개월여 만에 밀린 휴가비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지난달 29일 오후 6시쯤 휴가비를 받으려고 인천시 중구에 있는 H사 사무실을 방문한 정씨는 회사 측이 준비해 놓은 자신의 휴가비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근로감독관 지시에 따라 마지못해 휴가비를 지급하게 된 회사 측은 10원짜리 14자루, 50원짜리 8자루, 100원짜리 1자루 등 모두 23개의 동전 자루를 마련해 두었던 것. 은행이 문닫은 시간이라 지폐로 바꿀 수도 없었고, 무게가 200kg이 넘는 동전 자루를 가지고 부산의 집으로 돌아갈 엄두를 낼 수도 없었다. 정씨는 하는 수 없이 택시를 불러 동전 자루를 인근 지구대로 싣고 가 하룻밤 동안 무기고에 보관해야만 했다.

인천=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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