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 정치Q] 노 대통령 퇴임 후 거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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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진 정치전문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또 하나의 파격을 내놓았다. 2008년 2월 퇴임 뒤 (서울 또는 인근의) 임대주택에서 살다가 귀촌(歸村)하겠다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들이 서울의 번듯한 단독주택에 머무르는 것에 비하면 파격적이다.

그는 한국 현대사에서 서울을 떠나는 첫 번째 전직 대통령이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는 어디서 어떻게 살까. 3주 전쯤 노 대통령은 한행수 주택공사 사장에게 자신의 주택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현재 집도 없고 돈도 많지 않으니, 주공에서 적당한 임대주택을 분양하면 정식으로 임대계약식을 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같은 자리에 있던 추병직 건교부 장관과 김영주 경제정책수석도 이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임대아파트로는 대통령의 거처를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 퇴임 대통령은 비서실과 경호인력이 가까이에 상주할 공간이 필요하다. 아파트는 구조가 이에 적당하지 않을 뿐더러 경호.경비로 주민이 불편을 겪을 수 있다.

주공은 그래서 지금 연구 중인 임대연립주택이나 임대주택단지를 고려하고 있다. 한 사장은 "서울 인근에 그러한 임대단지가 지어지면 대통령의 거처를 알선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공에서는 노 대통령이 주택부금이나 주택청약예금에 가입하면 임대주택 분양자격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도 저도 안 되면 '국가유공자' 혜택을 부여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노 대통령은 경제적 사정보다는 또 다른 포석으로 임대주택 거주를 결정했을 것이다. 한 사장은 "노 대통령은 주택을 투기.투자.소유의 개념에서 거주의 개념으로 바꾸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퇴임하는 62세부터 몇 년간 서울 근교 임대주택에서 살아본 뒤 시골로 내려가 노년을 보낼 생각이다. 김종민 국정홍보비서관은 "노 대통령은 그동안 사석에서 시골생활 구상을 여러 번 얘기했다. 숲도 가꾸고 노인들한테 봉사도 하고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도 하고…. 노 대통령은 노후문화 개선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은 '세상이 무서워' 서울의 구석에서 누에고치처럼 웅크리고 있다. 노 대통령도 퇴임하면 반대자들에게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 임대주택에 계란이 날아올 수도 있다. 그래도 노 대통령은 집 밖으로, 시골로 열심히 다닐 것 같다. 정치를 멀리하고 봉사하는 전직 대통령으로 성공하면, 노 대통령의 지지도는 재임 때보다 높아질지 모른다.

김진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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