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핵 不容'과 '전쟁 不可'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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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무기용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핵 재처리 작업의 징후가 포착됐다는 보도는 북핵 문제가 새로운 차원에 진입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미 양국은 북한이 실제 핵재처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최종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그러나 미정보당국은 북한의 핵재처리 사실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 정부가 강온 진영의 논란 끝에 대화와 압박의 양면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럴 경우 '북핵 불용(不容)'과 '전쟁 불가(不可)'라는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은 자가모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큰 방향에서 보면 북핵 해결뿐 아니라 우리의 군사억지력 증강에 있어 우방과의 공조는 필수적이다. 그러자면 미국이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한미군의 재배치를 논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우리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 보유가 사실로 확인되고 핵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주한미군 재배치를 강행할 경우 우리의 대책이 무엇이냐가 문제다. 내년 말 재선을 앞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대북전략이 다분히 미국내 정치적 판단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우리의 고려 사항이다.

이럴 때 우리의 '북핵 불용'과 '전쟁 불가'라는 입장은 현실적 선택을 어렵게 만든다. 북한이 남북간의 비핵화 약속을 준수할 의사가 없음이 명확해진만큼 앞으로의 다자회담은 물론 유엔 안보리 등 다양한 외교창구를 통해 막무가내식 북측 행동에 대한 경고조치가 있어야 마땅하고 우리도 이에 호응해야 한다. 지금까지와 같은 북한 눈치보기 식의 안일한 대응으로 나갈 수는 없다. 이 점 또한 미국을 포함한 우방과의 긴밀한 협조가 요구된다.

이와 함께 우리의 군사억지력 보강책도 심각하게 논의해야 한다. 혹시라도 한국의 안보에 대한 엄중한 고려가 결여된 채 미국이 북한과 자의적 협상에 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을 다음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무게있게 다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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