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대첩 최후의 증인 이우석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청산리전투가 있은 지 62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묻혀있던 책산리대첩이 이렇게 햇빛을 보게 되니 정말 감격스러워 눈물이 납니다』
24일 한국독립유공자협회(회장 조경한)와 민족발전연구회(회장 이웅성) 주최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처음으로 열린 청산리대첩 기념식에 이 전투의 유일한 생존자로 참석, 공적기념패를 받은 이우석옹(87·서울 관악구 신림 7동 104의 2통1반).
『저는 전쟁 당시 일개 병졸로서 이제 살아있는 덕분에 이렇게 상을 받았습니다. 지금 상받을 사람은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분들이 받을 영광을 제가 대신한 것 뿐입니다』
1896년 충주태생인 이옹은 23세때 보부상으로 압록강을 건너 독립운동에 투신, 1920년 청산리 전투 당시에는 4중대4소대4분대장이었다. 10월21일과 22일 이틀동안 계속된 청산리대첩은 북로군정서독립군 1천여명이 10배 가까운 일본군 2개 사단과 맞붙어 수천명의 사상자를 낸 독립전사상 최대의 승전.
『이렇게 큰 전과를 올리게된 데는 우선 독립군의 사기가 충천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생사를 초월한 주민들의 협조와 시운의 힘을 입었다고 봐요.』 「오늘의 세대는 오늘을 책임지라」고 당부하고 싶다는 이옹은, 신림동 난곡마을 산비탈의 8평짜리집에서 월4만8천원의 생계보조로 살기 어려워 부인의 식모살이 외에 이따금 자신의 취로사업으로 세식구의 어려운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