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반인륜 범죄와 일본의 법적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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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과거 일본이 저지른 반인륜범죄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놓고 한.일 정부 간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1951년 10월부터 65년 6월까지 진행된 한.일회담 관련 외교문서 156권 3만5354쪽을 최근 공개하면서 "한.일 청구권 협정의 범주에 종군 위안부 등에 대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해당되지 않으며, 일본 정부가 이에 대해 따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못박았다. 반면 일본은 고이즈미 총리가 나서 "한국 정부와 입장이 다르다"고 일축했다. 일본 정부는 65년에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이 포괄적 배상협정이며 그 속에 종군 위안부 문제 등이 모두 포함됐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한국과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해 한.일 양국이 양자 간 채권.채무관계 해결을 위해 재산청구권의 테두리 안에서 한.일 청구권 협상을 벌였다. 당연히 일본의 반인도적 범죄행위인 종군 위안부 문제나 사할린 징용자 문제,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 등은 이 재산청구권 협정 밖에 있었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가 이러한 피해사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추가적.법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최근 국제사회의 인식과도 흐름이 같다. 정부는 앞으로도 한.일 양자 간 회의나 국제기구에서의 인권논의 때 일본의 반인도적 범법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계속 추궁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한.일 양국이 21세기 격변의 동북아 정세에서 미래지향적 협력을 논의하기보다 이러한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빚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과거사 문제가 걸림돌이어선 진정한 동반자로 발전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걸림돌부터 제거해야 하며 그 1차 책임은 가해자인 일본에 있다. 경제에 걸맞은 정치대국이 되고자 하는 일본이라면 피해자가 엄존하는 역사적 불행을 편협한 자국 중심적 논리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도의적 책임은 있지만 법적인 책임은 없다는 식의 궤변으론 문제를 풀 수 없다. 일본이 피해자인 이웃나라의 요구에 흔쾌히 응하는 모습을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