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협회의 한시회|「북악만추」등 시제 따라 40여 묵객의 풍월이 어우러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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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악의 만추에 싸여 풍류를 농하는 전통 칠언율의 한시가 그윽한 묵향을 풍기며 붓을 타고 한지위를 미끄러져 나갔다.
사단법인 한국 한시협회지부 한성문우사의 제1백3회 월례회겸 서예가 전정동씨의 도일전 귀국환영 한시회가 열린 11일 정오의 서울 평창동 벽수장-.
상투에 갓을 쓴 고풍의 의관차림을 한 노시인에서부터 50대의 양복차림 회원에 이르기까지 40여명의 한시인들이 참석했다.
이날의 시제는 「배악만추」와 「전정동 귀국환영」-.
운자는 각각 정·정·정·영·성과 연·연·전·부·지-.
회원들은 사전 연락을 받아 미리 집에서 지어온 시룰 붓으로 한지에 옮겨 쓰기에 바빴다.
주어진 시제를 따라 2수씩의 시를 정리, 제출한 시인들은 풍루의 한담을 곁들이며 점심을 들었다.
벽수장 문 앞에 걸린 전정동씨 환영의 모운시는 본인이 직접 지은 『죽장망혜』-.
창포일사악천연, 시주도예기십년
만고강산무한경, 사시풍월부논전
평생진력전수학, 도노복심미가전
사여의위다소한, 개중난득성이현
(떨어진 도포에 한 선비가 자연을 즐기니, 시와 술 그림과 글을 몇 십년이나 했던고. 만고강산의 경치가 한정이 없고, 함장 풍월만을 읊고 지내는 데 어찌 돈을 논하랴.
평생을 학문에 진력했는데, 늙어짐에 마음이 상하는 것은 전해줄 데가 가히 없음이라. 일아 뜻에 어긋남에 다소 한이 있으나 가장 어려운 것은 성인과 어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더라.)
낙운성시-.
이날의 한시회는 식사 후 고석운이 내려지자 달필의 붓글씨를 휘두르는 노시인들의 시작에서 하이라이트를 이루었다. 운이 떨어지기 무섭게 흐르는 풍월의 멋과 달관에 옛 전통의 천자만홍이 낙엽이 소스라치는 북악을 다시 한번 붉게 물들였다.<이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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