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독도에서 미국을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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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일 간의 대립이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한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의장은 독도에 대해 영유권을 강하게 주장했으나 과거 보상 문제는 "정부가 책임질 일은 책임지겠지만 일본도 인류보편적 가치 차원에서 할 일이 있으면 해야 한다"고 여운을 두었다. 반면 일본 외상 성명은 과거 배상 문제는 끝난 얘기라고 못박았으나 독도에 대해서는 "이 문제를 확대시키는 것은 양국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과거 보상에, 저쪽은 독도에 미련을 끊지 못한 것이다.

나는 지난번 글에서 우리가 더 이상 과거 문제는 거론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했다. 과거 보상 문제와 독도 문제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 보상 문제는 아무리 인류보편적 가치를 내세워도 협정을 무시하고 떼를 쓰는 꼴로 비치지만, 독도 문제는 우리 것을 지키겠다는 당연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태도는 명확하지 않다. 독도와 과거 보상 문제 모두를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독도를 내세워 보상을 더 받아 내려는 것인지 모호하다.

독도 문제는 이번에 분명한 매듭을 지을 좋은 기회다. 우리가 강하게 나가도 일본이 대응하기 어렵다. 일본 외상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과거 보상은 강하게 반발했으나 독도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나왔다. 우선 명분이 우리에게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지배해 왔고 지금도 우리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독도에 대한 양 국민의 태도가 다르다. 국민 중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국가 자존심과 직접 연계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 국민은 관심조차 없는 사람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독도가 우리에게는 핵심적 국가이익에 속하지만 일본에는 그렇지 않다.

주변 상황도 우리에게 유리하다. 일본은 북방도서 문제로 러시아와, 남중국해의 여러 섬을 놓고 중국과 대립하고 있다. 당장 이 두 나라가 일본을 어떻게 대할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일본이 침략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난처한 입장에 빠질 것이다. 북핵과 대만 문제 등으로 불안한 이 지역에서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분열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국이 앞장서 독도 문제가 악화되는 것을 막을 것이다.

만일 독도가 일본의 중대한 국가이익과 관련있는 섬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일본은 우리보다 경제력.기술력이 10배 이상이고 군사력 역시 월등하다. 해.공군력은 어른과 어린애 차이다. 최악의 경우 독도 인근에서 해상 분쟁이라도 발생한다면 우리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 한편 그 섬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일본은 러시아와 중국을 설득하여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미국도 달라질 것이다. 지금 미.일 관계는 최상의 수준에 와 있다. 반면 우리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우리는 고립무원, 고아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독도가 일본에 그렇게 중요한 섬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

나는 독도를 통해 미국을 다시 본다. 미군이 북한 때문에만 한반도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독도 문제만이 아니다. 통일 한국이 됐을 때 중국과 러시아와의 사이에 독도 같은 문제가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중국과는 간도가, 러시아와는 두만강 하구의 삼각주가 문제다. 우리 힘으로 영토를 지켜야 하지만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는 힘에 부친다. 자주국방을 외쳐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동맹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은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도 않고 우리의 영토를 탐낸 적도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미국의 힘을 가장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미국이 이 지역 강대국의 힘을 억제하도록 우리가 붙잡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친미주의자여서가 아니다. 국가이익 때문이다.

독도가 국가자존심처럼 되어 있는데 우리는 이 섬을 너무 천시했다. 이제부터는 경제적으로 이용하고 개발해야 한다. 관광도 하고 양식장 등 수산업도 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긋게 될 경제수역을 제대로 지킬 수 있다. 물론 일본은 그때마다 불평할 것이지만 앞서의 이유로 분쟁으로까지 끌고 가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흥분할 필요가 없다. 할 말조차 못하던 정부가 국민 여론의 압력으로 할 말은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조용히 독도의 실제적 지배를 위해 할 일을 하면 된다. 흥분할 사람은 일본 사람들이다. 만일 정부나 정치인이 과도한 목소리를 계속 낸다면 독도의 정치적 이용을 의심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비꼬듯 '국내용'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창극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