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여있던 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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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누구나 시골장 구경을 가보면, 군데 군데 두서너마리의 닭이 불편스럽게 발목이 한데 묶인채 새주인을 기다리며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침나절에는 그래도 가끔 제발목을 자유로운가 시험하듯이 당겨보다가는 이내 포기하고 만다. 오후쯤 되면 도로 늘어져 눈만 끔벅끔벅 불안해하고 있다.
쯔쓰! 다 저녁때가 되어서 하루종일 굶주리고 목마르게 버려져 있다가 누군가에게 팔려가는데 새주인집 마당에 당도해서 다리가 풀린다. 하지만 어찌된 셈인지 그 닭은 일어서 볼 궁리는 커녕 꿈쩍을 않는다. 두 눈을 불쌍하게 끔벅이고 갸우뚱, 닭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사방을 둘러본다. 아직도 제발이 묶인줄 착각하고 풀려난 것도 실감치 못한채 말이다. 아니,그는 숫제 자유를 포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발묶인 경험이 조건화되어 혹은 익숙해져서 라고나 할까. 마음마저도 묶여 버린것이다. 자유로와진 새 변화에 적응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 하겠다. 이 닭은 정녕 「새대가리」(머리가 나쁘다는 뜻) 밖에 안되는 머리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자기의 자유에 대해 생각조차 할수 없는것일까? 만일, 그 닭이 사람의 두뇌를 가졌다면 묶여 있을 때나 풀려 있을 때나 그 실제상황과는 무관하게 자유를 누릴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 학자에 따라 「개인적 자유」 혹은 「내면적 자유」라고 한다.
1977년 「짐바르도」라는 심리학자가 독방에 갇힌 한 죄수를 면담한 보고에서 그 죄수의 말을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그들은 나에게서 사랑하는 모든 것를 빼앗아 갔지만, 내가 생각하고 이해하고 살고자 하는 의지를 계속 유지할수 있을때까지 나는 자유롭다.』 인간은 외적인 자유스러움 없이는 살수 있어도 내면적인 자유없이는 살수 없다는 것이다.
지식은 내면적인 자유이며, 그렇게 가장 희망없는 장소같은 곳에서도 희망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또 「빅터·프랭키」는 나치스 포로수용소의 비인간적 상황속에서조차 죄수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 되는것은 단지 수용소 영향의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적인 자유프기에 의한 결과라고 했다. 인간에게서 모든것을 약탈할수는 있지만 어떠한 곤경에서나 자신의 태도나 반응방식을 책임과 더불어 선택하는 인간자유의 최후는 아무도 빼앗지 못한다는것을 우리의 청년들은 어려서부터 익혔어야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고등학교를 나을때까지 개인적인 자유와 개인적인 통제, 내면적인 자유와 외적인 자유로움, 자유에 수반되는 근심과 책임, 다양한 선택의 자유와 갈등이 얼마나 본질적인 자유를 상실하게 하는가 등에 관한 지식과 훈련도 없는 교육환경에서 마치 시골장 닭같이 묶여 있기만 했다가 대학이라는 마당에 졸지에 팽겨쳐 진 셈인것같다.
이들이 멀거니 있거나 혹은 방향감각도 잃고 넘쳐흐르는 에너지를 멋대로 뿜어대는 것도 필연적인 결과라고 판단되어 슬프다.
인간은 어려서부티 엄한 「제한된 자유」를 통한 「책임과 통제」훈련으로 다듬어졌어야한다. 성장하면서 서서히 건전한 지식의 증대가 참으로 개인적인 자유의 근원이 됨을 깨닫도록 교육받았어야 하지 않은가. <김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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