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생활의 체질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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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생활환경이 복잡해질수록 개인이나 사회가 질서의식을 체질화하는 문제는 매우 긴요한 과제로 등장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과거의 전통적 가치구조가 새로운 가치구조로 급격히 변화하는 상황에선 질서란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질서생활을 사회전반에 뿌리내리게 하는가가 초미의 급선무로 제기될 수도 있다.
질서란 모든 일을 혼란 없이 올바로 추진하는 순서나 절차를 의미한다. 사회생활은 이 순서나 절차를 무시하면 이내 혼란에 빠지며 혼란 속에서는 올바른 일이 행해질 수 없다.
법이란 결국 이 질서를 명문화한 것이며 민주국가가 법치국가라 함은 이 법에 나타난 질서를 존중함을 의미한다.
작년 2월에 열린 사정협의회는 이같은 취지에 따라 사회질서확립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했으며 사회정화위원회도 이번에 질서의식을 체질화하는 문제를 당면 목표로 내걸었다.
이번에 내건 목표는 거리 및 교통질서, 행락질서, 경기장 질서, 기타 공공질서 등 네 가지다. 이같은 목표는 혼란을 배제하고 올바른 일이 행해지도록 노려한다는 대국적 측면에서 보면 지극히 사소한 문제며 과연 이만한 일까지 우리가 체질화하지 못했는가 자탄이 앞선다.
거리질서 확립을 위해 중점 실천목표로 내건「바르게 걷기」만 해도 그렇다. 육교나 횡단보도로 길을 건너는 것은 도시민의 기초적 상식이며 무슨 운동에 앞서 개인이 스스로 알아서 지켜야할 일이다.
이런 일까지 무슨 엄숙한 회의와 결정이 필요할 만큼 우리의 질서생활은 문란했다는 말인가. 시민의 양식이 다시 한번 반성해볼 문제다. 언제까지나 이런 사소한 문제를 놓고 골치를 앓아야 하는가.
국가나 사회의 발전이란 전 사회체계의 상향운동을 의미한다는 정의가 있다. 스웨덴의 노벨상 수상학자「군나르·뮈르달」의 말이다. 이때의 상향운동은 생산과 소비를 주축으로한 경제적 요인 외에도 사회체계의 모든 비경제적 요인이다 포함된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문화국민으로서의 생활태도, 정신자세까지가 모두 향상되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경제생활이 과거보다 조금씩 나아진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도 이제 성숙할 때가 왔다. 그것의 한 편린으로 국민의 질서생활을 들 수 있지 않을까.
법질서가 예사로 무시되고 정치, 경제, 사화의 온갖 질서가 오히려 하향운동을 한대서야 어찌 나아진 경제생활 한가지만으로 이 사회가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산업혁명을 일찌기 겪은 서구에서도 질서유지를 위해 제일 강조된 것이 시민의 품격과 명예다. 사회의 혼란은 법질서 이전에, 또 무슨 대대적인 운동 이전에 시민개개인의 인격으로 극복돼야 한다.
이제 우리도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것이 타인의 권리나 공공질서를 침해하는 행위가 됨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개인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되 이것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기초적 윤리가 된다.
또한 당국은 왜 사회생활이 혼란을 거듭하는가, 그 근본적 원인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거리나 행락 질서를 지키려해도 오히려 여러 편의시설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질서가 깨지는 경우가 없는가 살펴야 한다.
질서를 지키는 사람은 손해를 보고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사람은 이득을 보는 사회에선 질서생활은 정착하기 어렵다. 당국은 이점을 고려해서 질서문란을 시민의 탓으로만 돌리기 이전에 주변환경과 제도의 정비에 힘쓸 것을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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