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류련민의 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당초 의도와는 엉뚱한 결과가 나타난 대표적인 예로 「생류련민의 영」이 자주 인용된다.
때는 덕천가강이 일본을 통일하여 정부를 연지 1백년쯤 되었을 때였다. 5대장군으로 취임한 강길은 독실한 유학자로서 이상정치를 추구했다.
강길은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을 편안케 해주고자 무척 애를 썼다.
권력층의 발호를 철저히 막고 관기를 쇄신하며 자신부터 근검·절약에 앞장섰다.
취임한지 5년 후 혁명적인 조처로서 「생류련민의 영」을 발포한다. 그 뜻은 숭고한 것이었다.
당시 일본은 평화를 찾았다하나 피비린내 나는 전국시대의 악몽이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장군은 만백성을 위한 가장 좋은 선물은 전란을 없애 평화를 영구히 보장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전쟁이 나면 백성들이 가장 피를 본다. 전쟁을 없애는 길은 무엇인가.
천하의 살기를 없애 화평한 기운이 가득차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살아있는 목숨에 대한 연민의 정을 높여야 한다.
개나 새같은 것부터 안죽이는 버릇이 들면 사람들의 마음에서 어느덧 살기가 빠지고 그러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같은 것은 안 일어날 것이 아니냐는 논리였다.
그래서 모든 생물을 죽이는 것을 일절 금한다는 영이 발포되었던 것이다. 장군자신도 고기나 생선을 안먹어 모범을 보이는 한편 위반자를 평화에 대한 중대사범으로 철저히단속했다. 그것이 만백성을 위하는 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엉뚱했다. 살생을 금지하니 개나 새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이에 따라 막대한 국고지출을 초래했다. 우선 강호에 있는 개들을 등록시켜 이를 관리감독하는 부서를 만들어야 했고 개싸움을 말리기 위해 물통까지 국고로 조달, 비치해야 했다. 또 시중의 넘쳐나는 새들을 섬으로 실어나르기 위해 특별선을 건조해야 했다.
나줌엔 강호성내에 야견이 넘쳐 대규모 개집을 지어 사육해야했는데 천만마리의 개를 기르는데 하루 쌀3백30섬, 간장 10동이, 마른멸치 10표, 장작 56속이 필요해 인건비를 합치면 연간 9만8천냥이 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막각에서는 개사육비용을 어떻게 조달하느냐가 큰 고심거리였다.
결국 그 비용은 백성들의 부담으로 돌아갔고 그때는 흉년이 나면 아사자가 속출하던 판이라 좋은집에서 팔자 늘어지게 사는 개들을 보고 『차라리 개로 태어났더라면』 하고 부러워하는 백성이 많았다 한다.
백성을 위한다는 숭고한 뜻이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개 때문에 원성이 천하에 가득해도 장군에게 올라가는 보고는 『오늘은 몇마리를 더 수용하여 정부의 따뜻한 보호를 받고 있는 개가 얼마에 이르며 아무개가 장군의 뜻을 받들어 개집 몇개를 자진해서 지어 기부한다 합니다…』라는 것이었다 한다.
「생류련민의 영」은 5대 장군재위시엔 아무도 말을 못 꺼냈다가 강길이 죽자마자 금지되었다.
사실 거국적인 프로젝트중에 이런 일이 많다. 높은분이 숭고한 뜻을 가지고 집념을 보이니 정책적인 차원에서 밀어야 한다면서 무리가 강행되는 것이다. 당초의 뜻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와도 일단 관료의 채널에서 가속도가 붙으면 브레이크가 없다.
몇 년전의 얼이었지만 농촌주택개량만 하더라도 당초 뜻과는 달리 농가에 오히려 부담을 주는데도 『농촌에서 자란 각하의 집념이니…』하고 밀어붙였다.
오늘날 그토록 부담이 되고있는 중화학공장 건설때도 비슷한 열기였다. 혹시 의문을 품으면 무슨 국가발전 저해사범이나 되는 듯한 분위기였다.
요즘도 무슨 큰 조처들이 많이 나온다.
사채를 뿌리뽑고 지하경제를 박멸하기 위한 7· 3조처, 질서정착화를 위한 택시합승 금지조치, 좀 오래된 것이지만 교육정상화를 위한 과외금지, 이런 큰 조치들이 당초의 숭고한 뜻과는 달리 엉뚱한 결과를 빚고 있지나 않은지 겸허한 마음으로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겠다.
「생류련민의 영」이 지금 보면 한 토막 희극이지만 그 당시엔 엄숙한 성역이었다. <최우석부국장겸 경제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