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운명의 숫자 63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블라드미르 푸틴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올 10월7일 63번째 생일 케이크를 받았다. 정치·경제적으로 순탄했으면 그의 나이인 ‘63’이란 숫자는 세상의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63이란 숫자가 의미심장해지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렇게 가다가는 내년에 기름값이 배럴당 63달러, 루블화가 달러당 63루블까지 추락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농담과 진담이 반반씩 섞여 있는 말이 모스크바에 퍼지고 있다”고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다. 2일 기준으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66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하루 뒤인 3일 온라인 거래에서 67달러 선을 회복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하락 추세다. 루블화 값은 폭락 수준에 가깝다. 2일 현재 달러당 54.14루블에 거래됐다. 전날보다 4.3% 떨어졌다. 더욱이 지난달 26일 이후 닷새(거래일 기준) 만에 털어진 폭만 해도 20.3% 정도였다.

 로이터 통신은 3일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하락폭만 본다면 러시아가 채무상환 연기(모라토리엄)를 선언한 1998년 이후 가장 크다”며 “닷새 사이 20% 폭락은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평했다. 러시아인들은 지금 상황만으로도 버겁다. 푸틴이 서방 경제제재에 농수산물 수입 금지로 맞불을 놓는 바람에 식료품 값이 뛰고 있다. 루블화 값이 추락하는 바람에 러시아인들의 구매력도 뚝 떨어졌다. 러시아 정부는 내년 자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실직자들이 늘어난다는 예고다.

 이런 와중에 기름값이 63달러까지, 러시아 통화 값은 63루블 선까지 떨어진다면 푸틴에게 ‘63’이란 숫자는 악연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인들이 요즘 보이고 있는 애국주의적 열정이 식으면서 푸틴이 정치적 위기를 맞을 수도 있어서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