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삶에 희망을 심어주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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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멀지앉아 우리들의 사링의 씨앗은 싹트리라』-.
이경재신부(57·사진)가 나환자들의 일그러진 얼굴에 성형의 삶을 더해주며 그들의 소외된 인권을 돌보고있는 종교적 「인권선교」의 현장인 가톨릭 수원교구 시흥 성나자로마을안의 담벽과 교육관등에 새겨진 캐치프레이즈다.
마을을 찾은 기자는 우선 수려한 자연경관 속의 그림 같은 현대식 환자용 숙소들과 이신부의 응접실이 너무나도 대조적으로 초라한데 놀랐다. 신부의 숙소및 사무실을 겸한 단층 기와집은 마을의 10여개 건물중 가장 허름한 막사였다.
탁자도 없는채 알루미눔 프레임의 비닐 의자 몇개가 놓인 붉은 타일바닥의 서너펑 남짓한응접실-.
이같이 황량한 응접실 풍경속에서 율무차 한잔씩을 손에 받쳐든채 마셨다.
『얼마전 한인사가 마울을 돌아보고 나더니 버려진 나환자들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고급시설이라고 하더군요. 나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이시설을 사용해야 아깝지 않겠느냐고 반문했읍니다. 혹시 권세가의 별장쯤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그는 나의 반문에 이내 얼굴을 붉힙디다.』
이신부는 건강한 사람이 병든 사람에게 건강을 나누어주는 봉사와, 소외된 절망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며 함께 살아주는게 곧 하느님으로부터 분배받은 육화한 인간의 사랑을 서로 나누어 가지는 일이라고 했다.
통칭 「나자로마을」로 불리는 가톨릭 성모병원부속의 시흥 성나자로의원에서 이신부와 함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누며 「부활의 삶」을 살고있는 독신의 노인및 불구나 환자는 모두1백7명(남56, 여51).
- 구나사업에 헌신하게된 특별한 동기는?
『오직 우연한 만남의 계기였을뿐입니다. 지금도 특별한 사명감 때문에 이일을 한다고 내세우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수원성당에 근무중이던 51년11월 이마을에 들렀다가 환자들의 요청으로 그해 크리스머스이브를 텐트속에서 함께 지내준게 인연이돼 구나사목의 길을 걷게됐다는것이다.
현재 전한국 가톨릭의 유일한 구나사목 전담사제이기도한 그는 신학교시절 미국하와이에서 3천명의 나환자를 모아 돌보다가 마침내 전염돼 일그러진 육체로 죽어간 「다미안」신부(벨기에)의 서적들을 읽고 받았던 감동이 자신을 나환자들과의 삶에 서슴지않고 나서게하는데 영향을 주었던것같다고 회상했다.
이신부는 매일 아침 6시30분(주일 9시30분) 새벽미사를 집전하면서 나자로마을 주민들과의 삶을 시작한다. 정오까지의 사무실 근무가 끝나면 하오엔 마을을 돌며 식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밖으로 나가 후원은인탐방을 하기도한다.
아침·점심·저녁으로하는 하루 3회의 기도는 환자들을 돌보는 9명의 수녀들이 방마다 설치된 마이크시설을 통해 인도한다는것-.
『나환자사목은 우선 육체와 의식주를 해결해줄 물질적 구원이 있고 다음으로 그들의 소외감과 절망을 감싸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신부는 아무리 훌륭한 그리스도의 복음도 인간적 문제가 해결되지않은 상태에선 먹혀들지 않더라는 생생한 체험과, 흔히 비정상인 나환자들의 성격을 정상화시키는데 따른 고층을 털어놓았다.
『올해부터는 외국에 나가면 한국도 이제 세계올림픽을 주최할만큼 부국이 됐으니 구나사업도 외원으로부터 자립해야한다며 지원을 잘 안해주려해요.』
성나자로마을 구나사목의 물질문제(연1억원)를 해결키위한 이신부의 「구걸행각」은 국내는 물론 미국·서독등에까지 국제적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점점 힘들다는 얘기다.
이마을의 모든 현대적인 시절은 이신부가 52년 초대원장을 맡은후 13년동안 살면서 이룩해놓은 것들이다. 그는 「캐롤·안」주교가 51년 서울 오류동에 창설, 다음해 시흥으로 옮긴후 원장직을 맡았다가 서울교구(7년), 미국파견근무(10년)등으로 일시 자리를 뜨기도 했지만 이마믈은 언제나 「마음의 고향」 이었다는것.
지난해 10월 준공됐다는 최신시설의 교육관 옆에는 재미교포들의 후원을 받아 건립중인 진료소(건평 1백평)가 마무리 공사를 서두르고 있었다.
「월드컵 식당」-.
낯익은 교육관부설 식당이름의 연유를 물었더니 서울무교동 월드컵식당 여종업원 35명이 후원회를 구성, 7년동안 보내준 성금 1천5백만원으로 건립했다는 것이다.
현재 5만여명(등록환자, 2만5천명)으로 추산되고있는 나환자는 등록환자의 경우 대체로 전국 1백1개 나환자촌에 살고있다. 가톨릭계 나환자촌은 모두 전국 37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잘못 인식하고있는 나병의 벽을 깨뜨리고 나환자들과 삶을 함께하는 이신부의 삶에서 그리스도적인 사람의 인권선교를 새롭게 읽고, 선물로 꺾어준 감나무가지의 살찐 감들을 만져보며 성나자로마을을 떠났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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