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경제 용어] 치킨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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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기름값이 과거보다 많이 내렸습니다. 집 근처 주유소에 세워둔 안내판을 유심히 보면 휘발유 가격이 L당 1700원 이하인 곳도 있을 거예요. 한때는 2000원이 넘을 때도 있었으니 엄청나게 내린 거죠. 지난달 말 산유국 모임인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 생산을 줄이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이런 추세는 꽤 오랫동안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산유국 입장에선 기름값이 높을수록 이득이 많이 생길 텐데 왜 가격을 떨어트리는 결정을 했을까요. 답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경쟁입니다. 요즘 미국은 셰일가스라고 하는 새로운 자원을 엄청나게 생산하고 있습니다. 현재 가격은 석유보다 쌉니다. 산유국의 대장 격인 사우디로선 석유 시장을 위협하는 미국 셰일가스를 가만히 두고 보기 어렵겠죠. 그래서 기름 가격을 더 내려서 셰일가스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려는 계산을 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이런 사우디와 미국의 경쟁을 가리켜 ‘치킨 게임’이라고 부릅니다. 치킨(chicken)의 원래 뜻은 닭이지만, 여기서는 겁쟁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원래 치킨 게임은 두 대의 자동차가 서로 마주보고 달리되, 먼저 방향을 틀면 지는 무모한 게임을 말합니다. 만약 둘 다 끝까지 피하지 않고 달리다 충돌하면 모두 생명을 잃겠지요. 하지만 한 사람이 피하면 목숨은 구하지만, 피한 사람은 겁쟁이란 놀림을 받게 되겠지요. 결국 이 게임은 양쪽 모두나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함께 망하는데, 누군가 먼저 양보하긴 정말 어려운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빗대서 국제정치학에서 ‘치킨 게임’이란 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1950~1970년대 미국과 옛 소련(러시아)이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군사력을 키우는 경쟁을 했는데, 이 경쟁이 대표적인 치킨 게임으로 불렸습니다. 요즘에는 국제정치 뿐아니라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 용어를 씁니다. 앞서 얘기했던 기름값을 둘러싼 경쟁이 대표적이죠. 원유를 캐는 산유국과 셰일가스가 많은 미국이 서로 더 싸게 팔겠다고 경쟁을 하면, 결국 양쪽 모두 밑지고 파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겠지요. 그렇다고 누가 먼저 꼬리를 내리기도 어렵습니다.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을 뺏길 수도 있다는 걱정이 크기 때문이죠. 에너지 시장을 놓고 벌이는 사우디와 미국의 치킨 게임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국제 사회의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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