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갈곳이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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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유는 명백하다. 외국 금리보다 국내금리가 훨씬 싼 마당에 될수록 외국빚을 쓰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기왕 진 빚은 국내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하루라도 앞당겨 갚으려 했고 바로 그러한 결과가 한편으로는 통화증발, 다른 한편으로는 무역신용의 급속한 마이너스를 초래했다.
은행융자가 힘들면 회사채를 발행해서라도 외채의 조기상환을 서두른 기업도 적지않았을 것이다.
같은 기간에 기업마다 앞을 다투었던 회사채발행 러시가 이를 말해준다.
개중에는 당장 필요치 않더라도 값 쌀때 사두자는 가수요현상까지 가세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힘이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오히려 자금여유가 있는 기업들이 이자 낮은 은행융자와 회사채발행을 선정하는 까닭에 정작 돈이 궁한 기업들은 회사채발행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금리가 내려서 금융비용이야 줄어 들었으나 지나친 저금리 때문에 자금조달 자체가 난관에 봉착하고 있는 셈이다. 으례 인하타령을 하게 마련인 기업들이 이젠 거꾸로 자기들 입으로 인상요구 또는 『얼마 안가 틀림없이 인상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은 풀린 돈이 곧바로 은행에 빨려드는 것이 문제였다. 다시 말해 풀린 돈이 생산자금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은행창구로 되돌아가 저축성예금으로 잠자고 있던 것이 고민이었다.
그러나 이젠 돈이 생산부문으로 안가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그것이 투기를 노리는 대기섬성금으로 움츠리고 있는 것이다. 더 위험하다.
더우기 실명거래제등의 영향으로 증권시장까지 위축되어 돈이 갈 곳이 없다. 아직은 괜챦지만 언제 뛰쳐나와 또한번 소동을 벌일지 모른다.
정부당국도 최근들어 종래의 완고한 저금리태도를 다소 누그러뜨려 장기채권에 대한 발행금리를 미폭이나마 인상했다.
물가가 올라야 금리도 올리고 물가가 내려야 금리를 내리겠다는 정부가 물가가 내리고 있는데도 부분적이나마 채권금리를 올린 것은 스스르의 논리 모순에도 불구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시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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