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5월 말 새 유출 경로 알고도 재조사 안 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청와대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된 각종 감찰·동향보고서가 유출된 사실을 인지한 시점은 지난 4월 초다. 당시 세계일보는 ‘청와대 행정관 5명의 비위가 적발됐으나 처벌받지 않고 제자리로 복귀했다’고 보도했다. 그 직후 청와대는 내부 감찰 문건을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이 기사화됐다고 보고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이 외부로 유출된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이 문제로 민정비서관실에서 공직기강비서관실을 상대로 문건 유출 경위와 관련된 조사를 벌였다”며 “당시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을 포함한 소속 직원들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렸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또 “조 비서관 입장에선 다른 비서관실로부터 조사받는 상황이 돼 상당한 굴욕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사 과정에서 공직기강비서관실에 근무하다 지난 2월 초 경찰로 복귀한 박모 경정이 문건 유출자로 떠올랐다. 당연히 조사의 초점도 ▶박 경정이 문건을 유출했는지 ▶이를 그 윗선에서 묵인했는지 등으로 모아졌다는 것이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인사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조사 결과 박 경정이 문건을 유출했다는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이후 4월 중순께 조 비서관이 사표를 내고 청와대를 떠났다. 당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출입기자들에게 “조 비서관이 인생의 다른 길을 걷기를 원했고, 본인이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청와대에서 근무해 온 한 관계자는 “실제로는 조 비서관이 문건 유출의 책임을 진 것”이라며 “본인이 원해서 나갔다기보다는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유출 의혹이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지난 5월 말~6월 초 새로운 변수가 나타났다. 민정수석실에 “문건 유출자는 박 경정이 아니다. 다른 루트로 유출됐다”는 구체적 내용의 보고가 올라간 것이다. 그러나 추가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청와대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지난 4월에 박 경정을 유출자로 지목하고 관련 보고까지 됐기 때문에 이를 뒤집는 내용의 보고를 바탕으로 다시 유출자 조사에 나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이미 조 비서관 등이 책임을 지고 나간 상황에서 문제를 들쑤셔 득이 될 게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청와대 내부 문건이 유출되는 대형 보안사고가 터졌는데 이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적당히 덮은 것은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고성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