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이견 노출 경쟁하나

중앙일보

입력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둘러싼 한.미 간 이견이 공개적으로 노출돼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연일 북한에 대해 모든 핵 프로그램의 포기를 요구하는 가운데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일반적 권리로서 마땅히 허용되어야 한다"고 반론을 폈기 때문이다.

6자회담이 최종 합의를 이룩하지 못한 상황에서 한.미 간에 북한 핵과 관련한 이견이 공개적으로 노출되는 모양새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회담 성공에 가장 필요한 한.미 공조 체제가 흔들릴까 걱정된다.

한.미 양쪽의 주장은 각각 일리가 있다. 미국 측이 문제 제기를 한 대로 북한은 영변의 실험용 원자로를 불과 몇 달 사이에 군사용으로 전환해 플루토늄을 추출한 전력이 있다. 그 때문에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에 대해 믿지 못하겠다는 논리는 틀리지 않고 이해도 된다.

하지만 핵확산금지조약(NPT)의 규정처럼 북한이 원자력의 군사용 전환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감시 체제를 받아들인다면 핵의 평화적 이용권은 모든 국가에 보장되는 보편적 권리가 된다. 정 장관이 "농업.의료.발전 분야의 핵 이용은 허용돼야 한다"고 밝힌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러시아나 중국도 북한의 NPT 복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전제로 핵의 평화적 이용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문제는 결국 북.미 간 불신의 구조를 타파하는 데서 출구를 찾을 수 있다. 양국이 신뢰를 구축한다면 핵의 평화적 이용권은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6자회담 휴회기간에 한국은 주변국 및 미국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이러한 불신구조를 해소하는 데 진력해야 한다. 그러자면 각국 간 이견을 물밑에서 실무적으로 조용히 협의하며 좁히고 해소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이견을 선전이라도 하듯 부각시키는 행위는 회담 진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견이 공개 표출되다 보면 자칫 거기에 발목 잡혀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한.미 관계자 모두 언론 플레이를 통한 이견 표출을 자제하길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