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국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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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희망과 의욕을 가진 국민은 밝은 사회,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
그것은 필연적인 귀결은 아니지만 적어도 개연적인 가능성만은 충분히 갖는 결론이다.
희망과 의욕은 긍정의 논리이기 때문에 이미 그 자체가 성공의 싹을 가지고 있으며 반대로 절망과 준순의 태도는 이미 그 자체 가운데 실패의 싹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비록 현실적으로 실패와 간난에 직면하여 고통과 좌절을 맛보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불요불굴의 용기와 미래에 대한 희망에 불타고 있다면 그것은 실로 난관을 타개할 열쇠를 가진 것이나 다를바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앙일보가 창간 17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실시한 국민생활 의식조사의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다.
우리 국민들이 털어놓은 가슴속의 생각들은 매우 개방적이었고 또 매우 희망적이었다.
국민들은 현재 근77%가 저축을 하고 있으며 69%의 사람들이 노후의 생활설계도 그 저축에 의존하려 하고있다.
우리의 중류의식은 일본국민의 중류생활의식 89%에 비해 9%나 낮은 것이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높은 자신감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이같은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결코「현재」에 대한 만족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은 그들의 생활이 작년에 비해 나아졌다기보단 오히려 어려워졌다고 하지만 45%는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이-장사건의 근본이유도 「두 사람의 허황된 욕심」(23%) 보다는 정치·경제·사회적 부조리(합계 77%)로 보고있다.
개인의 타락보다는 국가·사회의 구조적 부조리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같이 국민들의 「현실」부정의식이 좌절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현실의 부정을 통해 비로소 「미래의 희망」이란 긍정의 논리를 신봉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현실긍정의 맹목성보다 더 값지고 고귀한 의식이란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비록 오늘은 어렵고 고되지만 우리의 미래는 밝다는 국민 일반의 합일된 의식이 있음으로써 우리사회의 미래가 생생한 현실속에서 발전을 기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더우기 국민들은 현실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현실정치의 발전에도 커다란 희망을 보이고 있다.
비록 현정부가 약속하고 있는 평화적 정권교체에 대해 「두고보자」는 의견이 상당수지만 「이루어진다」는 선의의 신뢰를 표한 것이 32%를 넘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런 신뢰감에 근거해서 의식개혁운동이 「나 자신을 포함한 전국민의 실천운동」이라고 한 의견이 53%나 되었고, 세금문제에 있어서도 공평부과라고 생각하는 의견이 58%를 넘고, 59%를 넘는 사람이 적절히 사용된다고 믿고있다.
이같은 결과는 일면 국민의식 수준의 향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우리 국민은 이미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고 생활패턴을 바꾸는 단계는 넘고있다. 78%이상이 전과 마찬가지의 생활을 하고있는 것이다.
가정을 가진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해서도 69%가 적극 찬동하고 있으며, 아들과 딸의 교육은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이, 많이 시키려 하고있다.
개방적 사고가 증가한 것도 이번 조사의 특징이다.
이혼과 성문제 등 한국인의 의식은 탈 보수·개방화의 성향이 짙다. 이유있는 이혼에 71%, 사랑과 약혼상태의 조건이 있을 때의 성 관계도 63%나 된다.
이같은 의식의 개방성은 사회제도면의 자율과 개방을 강조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고교입시의 자유경쟁이 67%, 대학입시에서의 자율이 70%나 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정부가 관여하지 않아도 될 일에 끼어 들어 규제를 일삼고 말썽을 일으키는 어리석음에 대해 국민들이 얼마나 냉정하게 사리를 판단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증거도 된다.
기회의 평준화는 옳되 능력의 평준화를 강요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점에 대해 정부의 반성이 있어야겠다.
이같이 볼때 이번 조사는 우리국민들의 생활의식이 전반적으로 건전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의욕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커다란 희망의 증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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