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교육 주체들 다 어디로 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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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5월에는 어린이날.어버이날에 이어 스승의날도 포함돼 있다. 이런저런 날들을 특별히 따로 정해 기념하는 이유는 그렇게 해서라도 그 의미를 되새겨볼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승의 날 제정 취지문은 '인간의 정신적 인격을 가꾸고 키워주는 스승의 높고 거룩한 은혜를 기리어 받들고'라는 문구로 시작된다. 올 스승의 날을 눈앞에 두고 이런 머리말을 떠올리는 이유는 우리 앞에 펼쳐지는 오늘의 교육 현실 때문이다.

*** 내용이 텅 비어 있는 교육현장

교육은 애정과 신뢰, 이해를 밑거름으로 정성을 다해야만 좋은 결실을 볼 수 있는 사람 농사다. 그런데 오늘의 교육 현장에서는 불행하게도 애정과 신뢰, 이해보다는 증오와 불신만이 표출되고 있다. 기간제 교사와 교장 간의 갈등이 교장의 자살을 몰고 왔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도입을 놓고 교사들 간의 의견 차이가 폭력을 부르고, 정부와 전교조가 극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대립 구도 속에서 교장단이 거리 집회를, 전교조 교사들이 집단 연가 투쟁을 계획하고 있단다.

이 와중에 학부모들이 교사와 학교를 믿을 수 없다며 자녀들의 등교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인격을 가꾸고 키워주는'모습과는 거리가 먼 교육 현장의 모습이다.

교육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문제 해결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교육의 주체들이 보여주는 이 같은 문제 해결 방식을 보고 학생들은 과연 어떤 문제 해결 능력을 배울 것인지 부끄러운 마음에 앞서 두려운 마음이 든다.

각 주체들의 참뜻이 어떠하든 지금 우리의 교육 현장은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네거티브 섬 게임의 수렁에 빠져든 듯하다. 이 게임에서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이미 학교 교육은 형식만 유지될 뿐 내용은 텅 비어 있다.

학교 선생님이 체벌을 가하면 폭력이라고 항의하지만 학원 강사의 체벌은 관심의 표현이라 하여 오히려 고맙게 여긴다는 이야기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학교 교육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신뢰 정도를 가늠케 하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 보고에 의하면 조사에 응한 교사의 70.2%가 학생들이 학교 교사보다 학원 강사를 중시한다고 답하고 있어 교사 스스로도 낮은 신뢰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학교 수업시간에는 잠을 자거나 학원 숙제를 한다고 응답한 학생이 27%에 달하고 있어 교육의 장으로서 실추된 학교의 위상을 엿보게 한다. 현장에서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선생님들의 고통이 어떠할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고통스럽기는 학원으로 내몰리는 학생이나 높은 사교육비 부담으로 휘청이는 학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고비용 비효율의 소모적 교육의 탈출구로 교육이민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교육이 모두에게 불만스러운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느낀다.

교육은 개인의 미래뿐 아니라 국가사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어서 개인적 관심사인 동시에 국가 사회적 관심사다.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미래는 지식정보.자본.서비스.물자뿐 아니라 인력의 유통이 자유로워지는 '국경 없는' 세상이다.

*** 국제경쟁력 갖추기 노력해야

어느 나라 사람이냐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냐가 중요한 세상이다. 이미 우리 사회가 외국인들에게 열려 있고 외국 역시 우리에게 열려 있다. 이젠 교육도 '국제경쟁력'을 갖추었을 때만 생존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은 호불호(好不好)의 문제가 아닌 현실의 문제다. 교육이민 현상은 우리 교육이 이런 현실적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인 셈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도 과연 교장 선임방식,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도입 문제가 우리 교육의 최우선 의제인지. 또 그런 문제들은 지금의 방식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들인지.

우리 교육의 주체들이 역량을 모아야할 더 중요한 교육의 의제는 없는 것인지. 올 스승의날에는 모든 교육의 주체들이 학생과 학부모들이 더 이상 교육이민을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을 우리의 교육을 생각하는 하루가 됐으면 한다.

이경자 경희대 교수.언론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