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왼발톱 망치에 훼손 … 유리펜스 설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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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1504년 작 대리석 조각 ‘다비드(높이 4m34㎝)’를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복원·보수하는 모습. 다비드상 얼굴 표면에 착색된 오염물질을 적외선 촬영한 모습. 다비드 등 부분을 X선으로 분석한 세부. [사진 한국언론진흥재단]

다비드상의 변천사는 이탈리아 문화유산 복원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1504년 미켈란젤로(1475~1564)가 이 상을 피렌체 시청 앞에 세웠을 때는 한 나라의 자유혼을 상징하는 공공조각이었다. 거인 골리앗을 돌팔매로 무너뜨린 다윗의 기개를 피렌체 독립의 원동력인 시민정신에 융합했다. 요즘엔 그 정신은 뒷전이고 가장 완벽한 인체 조각상이란 미학 측면만 강조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미켈란젤로가 재평가되면서 이런 현상이 심화됐다.

 다비드상은 1873년 안전을 위해 야외(현재 시청 앞에 서 있는 다비드 상은 복제품)에서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안젤로 타르투페리 미술관장은 이전 전과 후에 여러 차례 복원 작업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미 1527년 민중 봉기 때 치켜든 왼쪽 손목이 떨어져 보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91년 한 정신이상자가 망치로 왼쪽 발 엄지발톱을 내려친 뒤에는 유리펜스를 설치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1년에 서너 차례 다비드상 전속 대리석 전문가 친치아 파르니고니가 보수 작업을 한다. 특히 지진이 잦은 지형 특성상 방진(防震) 설계에 주력하고 있다. 안전 보장을 위해 한 번에 600명으로 입장객을 제한할 계획도 세웠다. 2004년 표면 전면 처리 작업 이후 10주년을 기념해 내년 국제 학술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다비드상을 둘러싼 일화 중 가장 대중적인 이야기는 남성의 심벌 크기를 둘러싼 속설이다. 나신(裸身)을 제작하던 미켈란젤로에게 피렌체 시민들이 자기들 부인에게 무안하지 않을 정도로 아담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는 설이다. 당시 피렌체 주민들은 조각상을 자신들의 불행을 물리쳐 줄 수호신으로 여겨 시 곳곳에 다양한 조각상을 세웠다고 한다. 다비드와 짝을 이룰 조각을 세울 계획도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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