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 어용사건의 주심 이영애 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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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해방 후 최대의 사건이라 불리는 이·장 부부 어음사기사건을 첫 공판 후 불과 33일만에 요리해낸 주심 이영애 판사 (34) 는 현직에 있는 5명의 여성법관 중 최고참인「여판사 수석」.
경기여고-서울대 법대-사법시험 (71년·13회) 에서 모조리 수석을 휩쓸었던 1등 판사다.
『긴장을 하다 보니 한달이 금방 지나더군요. 법률적인 판단보다 과열된 여론을 외면하는 것이 더 어려웠지요.』이 판사는 삼복더위 중에 대법정 에어컨이 고장나 법정의 열기가 모두 법대 위로 몰릴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슬쩍 질문의 핵심을 피했다.
법대 위에서 장영자 피고인을 내려다 볼 때 같은 여성으로서 느낌이 많았지만 아직은 공개할 수 없는「법관의 비밀」이라고 입을 다물었다.
『관련 피고인이 많고 복잡한 숫자놀이라 신경을 많이 썼어요. 제가 주심이진 하지만 재판장님 (허정훈 수석부장판사) 과 장 판사님 (좌배석 장용국 판사) 이 거의 다 하신걸요.』
이 판사는 통상 주심이 판결문을 작성하지만 이 사건은 워낙 규모가 커 세사람이 합심해서 판결문까지 작성했다며 모든 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렸다.
『기록이야 매일 집으로 갖고 갔지만 철야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수사기록이나 공판기록의 정리가 완벽하게 되어있어 기록 보기가 비교적 수월했던 셈이지요.』
갸름한 얼굴에 차분한 성격의 이 판사는 사건의 핵심부분에 대해서는 마음의 문을 굳게 잠근 채「입조심」이 대단했다.
동료 법관들이 장영자 피고인과「영」자 돌림이고 이·장 부부 사건을 이·장 판사가 맡은 것이 모두 인연이 아니냐고 농담을 해도 이 판사는 웃기만 할뿐이었다. 또 8회 공판 동안 법정에서 한번도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피고인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던「무서운 눈빛」은 선고 후에도 여전했다.『샤프하고 논리정연한 판결로 형사법원의 보배지요. 앞날이 크게 촉망됩니다』는 김형기 형사법원장의 칭찬처럼 사법부가「수석여판사」에게 거는 기대는 적지 않다.
73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출발, 법관경력 만 9년. 76년에는 1년간 미국 하버드대학에 유학, 가족법관계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보사부장관·법무차관을 지낸 이경호 씨의 4남 3녀 중 2녀. <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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