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기습도 진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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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타임즈 지 (본사특약) 는 6일 일본의 교과서왜곡사건을 신랄히 비난하는 칼럼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앨런·굿맨」씨가『역사와 자신이 저지른 참극을 고쳐 쓰는 일본』이란 제목으로 쓴 이 글을 요약, 소개한다.
교과서가 국제적 문제를 야기하는 일은 흔치 않다. 일본인들이 역사를 사실상「다시 기록」했다는 뉴스는 한국인들의 폭탄위협과 중국정부의 공식합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일본 문부성은 젊은 세대에 대해 제2차세계대전을 새로운 각도에서 가르치도록 명령했음이 분명하다. 금년 가을부터는 일본이 과거에 중국·동남아·태평양 등지를「침략」한 것이 아니라「진출」한 것으로 표현될 예정이다. 또 20만명의 중국인을 살해한 남경학살사건을 남경이「혼란 중에 있었다」정도로 알게 될 것이다.
후대에게 그들의 침략과 만행사실을 가르친다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1천 8백만명이 사망한 2차대전을 이런 식으로 기술한다면 앞으로 일본인들은 진주만 기습사건도「진출」로 가르칠 생각인가. 그럴 경우 미국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나라마다 역사적 해설을 하는데 있어 어려움은 있다.
3년 전 이집트를 방문한 미국 관광객들에게 이집트의 공식 안내원은 피라미드가「지원노동자」들에 의해 건설됐다고 설명했다. 미국도 과거의 노예제도나 카우보이·인디언들의 신화를 가르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역사가 월남전을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 하는 것도 큰 과제 중의 하나다.
포클랜드에 관해서도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역사책은 서로 상반되게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경우는 그들 자신의 잘못을 우물우물 덮어두려고 하는 것 같다.
독일의 경우는 1962년까지「죽음의 캠프」를 어린이들에게 가르쳐왔으며 요즘은 오히려 나치의 잔학상을 더욱 노골적으로 실감있게 가르치고 있다.
국가나 부모가 자신들의 잘못을 말하기는 힘든 일이다. 어린이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잘못된 자만심을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의 죄과를 말살시키고 안 일어났던 것처럼 위장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욕되게 할 뿐더러 그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또다시 죽이는 행위나 다름없다.
미국이 과거의 적국이던 일본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일본인들 자신이 그들의 침략을 인정했고 동시에 그들이 패배했다는 사실도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일본인들은 미국에 그들이 잘못했다고 분명히 말했다. 일본인들은 후세들에게도 그들이 잘못했다고 말해왔다.
일본인 후세들이 자기 조상들의 죄과를 그대로 뒤집어 쓰지는 않을 것이다. <워싱턴=김건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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