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시어머니 뺨은 KBS가 때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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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뺨을 맞는 충격적인 장면이 공영방송의 전파를 타고 안방에 들어왔다.

KBS 2TV 일일시트콤 '올드 미스 다이어리' 170회 '너에게만…'은 아이가 국그릇을 엎어 데었다는 이유로 아이를 돌봐준 시어머니의 뺨을 며느리가 때리고, 기막힘을 호소하는 어머니에게 아들은 "맞을 짓을 했다"고 질책하는 장면을 버젓이 방영했다. KBS는 제작진의 사과문 게재에 이어, 다음주 초 프로그램 평정회의를 통해 프로그램에 대한 제재 수위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마무리 지어서는 안 된다. 일부 제작진이 저지른 일회성 과오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방송법 제86조는 방송사업자에게 보도프로그램을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에 대한 사전 심의를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방송위원회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서 '국민의 윤리의식과 건전한 정서를 해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더구나 직계존속에 대한 폭행은 실정법에서 매우 엄히 다스리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KBS는 "사전심의 과정에서 문제라는 인식을 안 한 것은 아니나 노인의 애환과 서글픔을 드러내기 위해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제작진뿐 아니라 심의 관계자들까지 극단적 패륜 장면이 미칠 악영향을 간과했다는 것은 KBS 구성원의 인식이 얼마나 국민의 정서와 유리돼 있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근래 들어 '그녀가 돌아왔다' 등등 극도로 파행적인 인간관계를 다룬 KBS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인식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KBS가 국민의 윤리의식과 건전한 정서를 도외시하는 '집단적 무감각증'에 걸려 있는 한 아무리 내부 제재를 해봐야 소용없다.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에 떠밀려 마지못해 하는 일회성 제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근본적인 시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 방향은 '공영성의 회복'이다. KBS 경영진은 조직원들이 시청률 경쟁의 늪에서 벗어나 공영방송의 책무를 다하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