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대통령의 골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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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의 매력은 광활한 자연 경기장에서 정교한 인간기술과 불가항력적인 운명이 만들어 내는 공의 조화를 음미하는 데 있다. 골프장을 향하는 아마추어들은 머리 복잡한 일상과 격리돼 온전히 자연 속에만 파묻히는 설렘에 흥분한다.

5월의 골프장은 계절의 여왕다운 자태를 농염하게 뿜어내고 있다. 눈이 시리도록 파릇한 잔디와 붉은 빛깔의 영산홍, 맑은 물과 정적을 깨는 이름 모를 새 소리들이 초여름 골프장의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골프장을 찾아 "넉넉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한시름 털고 갑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그러고 보면 대통령이 일반 골프장을 출입한 것은 10년 만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이를 어긴 청와대 비서관을 대기발령하거나, 평일 골프를 친 지방 경찰청장을 좌천시켰을 정도로 추상 같았다.

1990년 3당 합당 과정에서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골프정치를 할 때는 드라이버를 과격하게 휘두르다 엉덩방아를 찧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YS가 골프 중단 결심을 한 데는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주변에선 전한다. 첫째, 시간을 너무 잡아 먹는다. 둘째, 자주 진다. 승부욕 강한 그에겐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셋째, 등산을 할 때 YS는 항상 맨 앞에 서는데, 골프에선 네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게 탐탁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다리가 불편해 원래 골프를 안 쳤다. "골프장을 갈아 논밭으로 만들어야 한다"던 DJ의 부정적 시각은 97년 대선을 앞두고 '골프 대중화'선언으로 교정됐다.

집권전략상 비토 세력인 구여권.상류층에게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는 증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DJP 후보 단일화 성사를 위해 골프광인 JP를 감동시키는 것도 중요했다.

정통성 문제에 시달렸던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서민의 눈을 의식해 골프치는 모습이 공개되지 않도록 예민하게 신경썼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시름 털기 위해 골프장을 한번 갔다가 "당선을 위해 한표를 던진 서민의 눈에서 눈물이 난다"는 공격에 한걱정 덤터기로 쓰고 있다.

1년간 골프장을 찾는 연인원이 1천5백만명, 중복출입을 뺀 주말골퍼는 2백70만명으로 프로야구 관람객보다 많은 시대다. 대통령의 골프는 금기일까, 아니면 공개되지 말아야 할 안가(安家)형 운동일까, 생각이 많아진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