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경제교육] 조인수 한국피자헛㈜ 대표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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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50대인 우리가 어렸을 때 한국은 가난했다. 정확히 비교하긴 어렵지만 국민소득으로 보면 지금의 베트남 수준이 아닐까?

인천에서 자란 나는 초등학생 시절 미국에서 원조한 배급 식량인 딱딱한 우유 덩어리와 옥수수 빵을 아껴 집에 가져 가서 형과 함께 먹던 생각이 난다.

지금도 가끔 그 생각이 나서 제과점에서 옥수수 빵을 사먹을 때가 있는데 어릴 적 그 구수한 맛은 찾기 어렵다.

우리 형제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어머니는 "어떤 상황에서든 항상 감사하고 행복을 느껴라"고 가르치셨다. 가난했던 그 시절에 어머니는 정신교육으로 우리를 무장시켰다.

대학생이 되기 전에 브라질로 이민 가서 생활했기 때문에 나의 대학 시절은 요즘 젊은이들 기준으로 보면 한마디로 고생 그 자체였다.

모든 이민 세대가 그랬듯 대학도 스스로 벌어서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트럭 운전사와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 야채상회 점원, 빌딩 청소부 등 대학생 때 이미 10가지 이상의 직업을 경험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경험을 대라고 하면 이 시절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이런 다양한 노동을 하면서 우리 가족은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가르침 때문에 나는 회사에서 늘 직원들에게 미소를 잃지 말라고 강조한다. 직원들이 행복해야 고객에게 행복을 서비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매장을 찾는 모든 고객에게 우리가 행복을 선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두 딸은 초등학생 때부터 작은 일을 시작했다. 어렸을 때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이들은 용돈을 스스로 버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대학 4학년인 큰딸은 4년 내내 주로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아르바이트를 했고, 지금은 일주일에 며칠 사무직으로 출근해 용돈을 번다. 요즘 취직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데 나는 모른 척 한다.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딸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임을 나 자신의 체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조인수 한국피자헛㈜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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