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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만인보 '붉은 소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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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990년대 초 동유럽의 어느 국경지대에서 한 사진작가가 세관원과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이건 예술이라니까요." "가구!" "예술!" 그들 곁에는 진홍빛 소파가 깐깐한 세관원의 판정을 기다리며 우두커니 앉아 있다. 사진작가는 주섬주섬 앨범을 꺼내 그에게 들이민다. 부랑자에서 대부호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소파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들이다. 그뿐이랴. 공사현장에서 턱 하니 앉은 '고르바초프'며 도발적인 바니걸들에게 둘러싸인 파자마 차림의 '플레이보이' 사장 '휴 헤프너' 같은 유명인들의 사진을 보더니 히죽 웃으며 선선히 볼모로 잡힌 소파를 풀어준다. "그거, 나올 때 도로 가져가는 것 맞죠?" "아먼요~" 이 사진작가는 놀랍게도 벌써 25년째 소파를 끌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다. 무엇 때문에 그는 사서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그가 문제의 '붉은 소파'를 처음 만난 것은 1979년 뉴욕. 친구 아틀리에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진홍빛 소파에 한눈에 반한 그는, 바로 이 매력덩어리를 접수한다. 그리고 동료와 함께 미국 전역을 다니며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이 소파에 앉혔다. 이 출사의 결과는 83년 '붉은 소파: Red Couch'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여기서 그쳤을까. 이후 고향인 독일로 돌아간 그는 90년 이후 다시 세계인들과 만나고 있다. 유리창닦이를 만나기 위해 소파는 고층 빌딩에 매달리는가 하면, 코소보의 폐허와 어느 협곡에서 소파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아무튼 2만5000명의 세계인과 만나겠다는 이 사진작가의 두둑한 뱃심과 신나는 아이디어는 이미 그 자체로도 많은 이에게 유쾌함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하다. 그저 재미있다고 넘기던 그의 사진 속에서 실로 아주 묘한 느낌을 받았으니, 바로 이 붉은 소파 안에서 모든 인생은 이상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침팬지 인형을 두고 온화한 표정으로 앉은 제인 구달 박사 못지않게, 사과 더미에서 '내 사과는 지존, 다 덤벼'라고 카리스마를 분출하는 노르망디의 무명 농부에게서도 신비한 아우라가 전해진다는 것. 뻐기듯 앉아 있는 휴 헤프너에 못지않게, 도살장 한가운데 소파를 놓고 앉아 '우리집 육질은 내가 보증하오'라는 표정으로 300년째 가업을 잇고 있는 도살장 주인의 당당한 위용. 그 모든 것이 이 사진작가의 '붉은 소파' 프로젝트가 담고 있는 평등의 상징이다. 그저 일상에 고요히 몰입한 인간을 고귀하게 돋보이게 만드는 마법의 오브제는, 모든 삶의 궤적은 존중할 만한 정신세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강렬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사진작가는 '붉은 소파'도 성숙한다고 생각하여(사물도 경험을 축적하면 미감이 달라진다) '보편의 소파'라고 개명해 주었다가 지금은 '인류의 갤러리'라는 이름으로 동반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한 교양잡지에서 이 '붉은 소파'의 여행을 조우한 뒤 그 이미지는 소위 문화메시지 생산자인 필자에게 일종의 조혈작용을 해주었다. '붉은 소파' 자체의 아름다움과 포용성에 대해, '붉은 소파'에 앉아 조용히 삶을 증언하고 지구촌의 수많은 무명씨의 존엄성에 대해.

아, 참, 궁금하시리라. '붉은 소파'의 주인은 독일의 사진작가 '호어스트 바커바르트'다. 아마도 여전히 소파를 끌고 다니며 결정적으로 정말 '솎아내야' 하는 사람은 없는 거라고 그의 오랜 동반자와 함께 중얼거리며 어느 국경을 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붙박이로 살고 있는 필자는 소파의 행로나 짐작하며, 빙산에 '붉은 소파'를 놓고 앉아 "부럽지?"라고 외치는 아이슬란드 젊은이의 사진을 걸어두고 기나긴 열대야를 견디고 있다.

최효민 국악방송 PD
◆약력=전 국립국악원 기획전문가. 국악FM방송에서 문화, 세계음악 프로그램 연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