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상고법원 설치에 앞서 고려해야 할 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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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법원이 상고법원 신설을 검토 중이다. 2심에 대한 불복신청(상고) 중 일부 사건을 심리하는 법원을 별도로 설치해 3심 재판부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두고 지난 9월 대법원 공청회와 10월 대한변호사협회 토론회가 각각 열렸다. 대법원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관련 법안을 국회에 낼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이 대안 마련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법원이 한 해 처리하는 상고 건수는 3만6000여 건에 이른다. 대법관 한 명이 3000여 건을 처리해야 한다. 아무리 연구관을 많이 둔다고 해도 충실한 심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대법관의 업무 과중만이 문제가 아니다. 정작 숙고가 필요하거나 국가운영에 큰 영향을 주는 사건을 집중 심리하기 어렵다.

 그러나 상고법원 설치가 과연 국민을 위한 최선의 선택인지는 지금 단계에서 판단하기 어렵다. 설령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를 대안으로 밀고 나간다 하더라도 몇 가지 문제점은 반드시 먼저 짚고 가야 한다.

 우선 하급심을 강화하지 않고 상고법원만 설치하면 전체 법원의 신뢰도는 더 낮아질 수 있다. 형사사건에서 1심 결과가 2심에서 달라지는 경우가 40%에 달한다. 상고심에서 바뀌는 경우도 5%다. 현재의 1, 2심을 정상화하지 않고 경력 있는 하급심 판사가 신설되는 상고법원으로 빠져나가면 1, 2심이 더 부실해질 수 있다.

 게다가 상고법원이 잘못 운영되면 실질적인 4심제가 돼 재판의 효율성을 더 떨어뜨릴 수 있다. 상고법원 안에 따르면 하급심이 기존 판례에 명백히 반대되는 판단을 했을 때 특별상고가 가능하다. 많은 사람이 이를 원하게 되면 선별적으로라도 받아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특혜·전관예우 시비가 일어나면서 점차 특별상고 허가 건수가 늘어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상고법원 신설이 ‘고위직 늘리기’라는 시각도 있다. 현재 법원에는 차관급인 고등 부장이 130여 명, 장관급(대법관)도 14명이나 있다. 상고법원이 설치되면 적지 않은 수의 고위직이 늘어날 것이다. 가뜩이나 공공부문의 방대함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는 시절이다. 대법원의 숙고가 필요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