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 여파로 機內에 15시간 갇혔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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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평양 순안공항 활주로에서 꼼짝없이 하룻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새벽 1시30분쯤 회담 타결 소식을 들었을 땐 승무원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지요."

10차 남북 장관급회담에 참석한 남측 대표단의 귀환을 위해 지난달 29일 평양에 갔던 아시아나항공 전세기 OZ-8016편의 강선화(姜善和.34)사무장. 그는 남북 간의 협상지연으로 기내에서 15시간을 버텨야 했던 상황이 아직도 생생한 듯 상기된 표정이었다.

"보통 때라면 북한 당국이 관례에 따라 평양시내 관광을 시켜주거나 공항터미널에 있는 귀빈용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번엔 꿈도 꿀 수 없었어요. 모두 사스 때문이죠."

순안공항 측은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의 유입을 우려해 남측 승무원에게 기내에 머물 것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姜사무장과 동료 7명은 뜨고 내리는 비행기조차 없는 적막한 활주로에서 "회담이 곧 끝날 것 같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북측 관계자의 말만 믿고 갇혀 있어야 했다.

입사 13년차인 베테랑 여승무원인 姜씨도 엔진이 꺼진 기내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내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姜씨는 "30일 새벽 5시가 넘어 이륙했는데 밤샘 협상에 파김치가 된 회담 대표들이 눈도 붙이지 못한 채 곧바로 귀환보고 자료를 챙기는 것을 보면서 통일로 가는 길이 정말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다음 방북길에는 평양시내를 꼭 한번 둘러보고 싶다는 그는 "하루 빨리 정기항로가 열려 남북간을 자유롭게 오갈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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