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분배중심''위원회 공화국' 바로잡을 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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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참여정부의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이 퇴진한다. 지난주 정책기획위원회가 맡아오던 각종 대통령 직속위원회의 업무와 예산이 정책실로 이관됨에 따라 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청와대는 "(이 위원장의 퇴진이) 문책성 경질이 아니며, 정책기조가 바뀌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위원장이 물러남에 따라 앞으로 경제정책 결정시스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이 위원장은 그동안 경제를 불안하게 만든 온갖 정책적 논란의 정점에 서 있었다. 그는 이 정부가 출범 초부터 내세운 분배중심 정책의 정신적 지주이자 설계자였을 뿐만 아니라, 각종 대통령 직속위원회를 총괄하면서 정상적인 의사결정 체계 밖에서 사실상 정부 정책을 주도해 왔다. 따라서 그의 퇴진으로 '위원회 공화국'의 청산과 정책결정 과정의 정상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각종 위원회의 업무와 예산이 정책실에 흡수됐다는 것은 이 같은 변화의 단서가 될 수 있다. 청와대 스스로가 위원회 중심의 정책운영 시스템이 불러온 혼란과 비효율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이 같은 시스템 변경은 집권 중반을 넘기고도 경기회복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선택이다. 이왕에 그런 선택을 했다면 정부의 정책기조도 이념 과잉의 구호성 개혁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실용적인 정책노선으로 바꿔야 한다. 그동안 소리만 요란했던 각종 개혁 구호와 수많은 로드맵이 남긴 것은 저성장과 양극화뿐이지 않은가.

이 위원장의 퇴진에 따라 통상적인 정책라인에 서 있는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의 역할이 커졌다. 특히 정부 경제팀의 수장인 부총리는 청와대 주변의 이념적 편향과 정치적 계산에 휘둘리지 말고, 실용적인 경제정책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주도해야 한다. 이제는 정부 정책의 실패를 복잡한 의사결정 채널 탓으로 돌리기 어렵게 됐다. 섣부른 아마추어리즘과 왜곡된 정책결정 시스템의 실험은 지난 2년 반의 경험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