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개방, 무조건 손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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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주권을 팔아먹는 민동석은 한국을 떠나라'.

지난 3월 교육 개방 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을 때 수없이 날아 들어오던 전자 메일 제목 중 하나다. 나는 대한민국 정부의 서비스 협상 대표다. 그러나 그 이전에 두 아이의 교육을 생각해야 하는 아버지다. 그런데 교육자들에게서 '을사오적''매국노'라는 소리를 듣다니.

*** 무역장벽 낮추는 서비스 협상

2년 전 지방의 한 도청 소재지에서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에 관한 설명회를 할 때였다. 수십명의 시위대가 갑자기 몰려 들어와 구호를 외치더니 한 사람이 쌀 부대를 뜯어 연단에 앉아 있던 내게 사정없이 쌀을 뿌려댔다.

청중 사이에 사복 경찰들도 앉아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80㎏ 부대의 쌀을 다 뒤집어쓰고 난 후 나는 물었다.

"여러분에게 저는 누굽니까? 여러분의 적입니까? 제가 무조건 여러분의 이익에 반하여 협상을 합니까? 협상 진행 상황을 설명하고 대책을 협의하러 온 저에게 이런 물리적 폭행을 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오는 19일부터 제네바에서 미국 등 주요 무역 상대국과 서비스 시장 개방 협상을 한다. 우리는 이미 36개국에 시장을 열라는 요청서를 제출했고, 미국.유럽연합.일본.중국 등 25개국이 우리에게 시장 개방을 요구해 왔다.

국내총생산의 70% 이상을 무역에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이번 협상이야말로 우리 시장을 넓히고 수출을 늘릴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또 서비스 협상에서는 무엇보다 유통.통신.건설.금융.해운 부문에서 무역장벽을 대폭 낮춰 우리 기업에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문제는 시청각.보건의료.교육과 같은 분야다.

어느 나라에나 민감한 분야가 있게 마련이고 개방 반대에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익집단의 목소리만 크다.

반면 개방의 이점을 말하고 동조하는 목소리는 약하고 잘 들리지 않는다. 개방의 최대 수혜자가 될 소비자를 대변하는 일부 소비자단체까지 개방의 혜택을 이야기하기보다 저질 서비스의 유입을 먼저 걱정하고 있으니 말해서 무엇하랴.

일부 학생과 학부모조차 '교육이 상품이냐''개방하면 공교육이 붕괴한다''저질 외국 대학만 들어올지 모른다'는 등 공급자들의 주장을 대변한다.

이런 중대한 문제를 두고 누가 균형을 잡아줄 것인가. 정부인가, 언론인가, 정치권인가, 아니면 기업인가. 많은 사람들이 개방은 무조건 손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 문제다.

최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교육 개방 문제를 논의하던 중 어느 장관이 영안실을 예로 들었다. 어떤 종합병원이 깨끗한 영안실을 만들었더니 열악했던 다른 영안실이 모두 대폭 개선됐다는 것이다.

개방의 효과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예다. 개방에 대한 정책을 결정할 때마다 개방에 따른 충격.어려움을 이야기하지만 그와 같은 어려움이 없다면 개방은 하나마나다.

정부가 대책을 세우고 업계 스스로도 대비하여 극복해 나가는 가운데 경쟁력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몇년 전 어려움을 무릅쓰고 유통서비스를 개방했기에 우리 업체가 중국에까지 진출할 수 있는 경쟁력이 생겼다.

*** 수요자 입장에서도 따져보자

통금해제.교복자율화를 단행했을 때도 얼마나 많은 걱정들을 했는가. 그러나 모두 기우였고 삶의 질은 크게 나아졌다.

지금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는 일류 상품 중 개방의 고통을 딛고 일어서지 않은 것이 있는가. 저질 서비스에 대해서는 정부의 대책도 마련돼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선택에 맡기면 된다.

개방 문제는 공급자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수요자 입장에서도 보아야 한다. 외국법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기업, 질좋은 교육과 의료서비스를 받을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일반 국민의 권리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중국은 서비스 개방에 관한 한 저 멀리 앞서 가있다. WTO에 가입하면서 이미 법률시장을 개방하고 영리 목적의 외국 교육기관과 병원을 설립하는 것도 제한없이 열어 놓았다.

몇년 뒤 중국과 한국의 서비스 산업은 어디가 경쟁력이 있을까.

閔東石 (외교통상부 심의관/도하개발아젠다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