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盧대통령 TV토론의 명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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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의 TV토론은 그동안 국민에게 불안감을 안겨줬던 몇가지 현안에 대해 현실적인 인식을 보여준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민감한 문제는 답변을 회피한 데다 전반적으로 변명이나 해명 위주로 진행돼 토론의 참뜻을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盧대통령은 냉엄한 국제 관계를 무시하는 듯했던 '한국 주도론'을 실리 위주로 전환하고, 미군 기지 이전도 미국 측과 다시 협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노조만 편들어서 안된다는 盧대통령의 주문도 이념편향성에 대한 불안감을 불식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럼에도 특정세력의 불만을 살 만한 대목은 모두 피해가 대통령의 위기 극복과 국정 운영 청사진을 기대했던 국민을 허탈하게 했다. 특히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해 "선생님과 대통령이 하는 얘기가 같을 수 없다"며 답변을 회피한 것은 문제였다.

김구.김옥균.최명길 등 역사인물을 거론하며 우회적으로 현실의 불가피성을 전하려 한 것은 국군통수권자로서 당당하지 못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대통령조차 최소한의 명분도 제시하지 못한다면 우리 국군은 무엇을 위해 파병해야 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측근인 안희정씨에 대한 비호 발언도 문제다. 피의자 신분인 安씨에 대해 대통령이 "동업자" "사리사욕에서 일한 것이 아니라 나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검찰 수사에 부담을 준다는 점에서 적절치 못했다.

국정원장 임명을 국회 존중과 국정원 개혁이라는 양자택일의 문제로 단순화한 것도 문제지만 야당의 반발을 '조금만 있으면 조용해진다'고 말한 부분은 야당 폄하요, 오만으로 보일 수도 있다.

각본대로 연출.진행되던 과거 '국민과의 대화'보다는 신선했다는 게 중론이다. 그렇지만 대통령과 비슷한 성향의 패널 선정으로 다양한 의견이 도출되지 못했다.

대통령이 국민과 접촉해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회는 많을수록 좋다. 국정운영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서는 방식의 개선과 함께 좀더 진솔한 접근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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