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업자에겐 몇 푼의 자금도 인색한 은행|돈 있는 사람에겐 담보조차 없이 거액대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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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세업자에게도 융자를 하여 준다는 은행이 있어 찾아간 적이 있었다. 부동산이라곤 한 푼 짜 리도 없는 영세업자가 은행을 찾아오다니-창구직원의 냉소를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워낙 신세 처량도 하고 빈한한 처지라 융통도 되지 않는 인간사 때문에, 나의 인간과 양심을 담보(?)하겠사오니 저리로 얼마 큼의 금전을 빌어 쓸 수 있도록 도와 주십 사하고 각하께 진정서를 올리기까지 했다. 민원실에서는 재무부로 이첩했다는 회답이 왔고, 이재국에서는 담보물 없이는 현행법상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통보였다.
한 여인이 수천 억 원을 활용(?)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기절케 한 세칭 장 여인 사건은 심사를 산란케 한다.
비리·부조리 척결에 정치생명을 걸고 정부는 많은 사람에게 선서하게 했고, 사회정화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시국을 안정시키고 국력을 결집하려고 혼신의 정열을 쏟아 왔다. 세월이 갈수록 이 같은 운동은 사라져야 마땅한데 우리의 현실은 갈수록 태산이니 어딘가 크게 잘 못된 곳이 있는 것 같다.
돈이 곧 인격이요. 자비요, 신의요, 정의요, 생명이요, 양심이요, 위대함이 되어버린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우리는 한번쯤은 반성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가난한 자는 가난으로 하여 죄를 짓고, 부자는 지나친 치부 욕으로 하여 죄를 짓는다.
돈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부자에게만 편중대출을 하고 있는 현실, 국외에 재산을 도피시킬 정도로 주인의식이라곤 싹수조차 없는 자에게 무담보 거액융자를 줬다는 사실, 거기에 배후와 뇌물이 개재되었다는 비리비리한 얘기들이다.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고 상호 불신하는 가운데 권력이 금력과 결탁하여 천정부지의 치부 욕을 발휘했을 때 국가가 어디로 갔는가를 우리는 월남에서 보았다.
많이 가진 자의 범죄는 국가와 민족을 살상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배흥윤<진주시 상대동 주공아파트12동4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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