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대북송금 주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현대상선이 북한에 보낸 2억 달러의 송금은 국가정보원의 주도 아래 마카오의 북한계좌를 통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송금 과정의 실무를 맡았던 당시 외환은행 본점 외환사업부장 백성기(白誠基·현재 경영전략부 조사역)씨는 2일 “당시 송금은 국정원이 마카오에 있는 북한 계좌로 돈을 보내 이뤄졌다”며 “그러나 당시에는 현대상선의 자금인지 몰랐다”고 밝혔다.

白씨는 이날 대북송금 의혹사건을 수사 중인 송두환(宋斗煥)특검팀의 소환 조사를 받은 뒤 기자들과 만나 “국정원이 송금 편의를 봐달라고 협의를 해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와 관련,임동원(林東源)전 국정원장은 지난 2월 김대중(金大中)전 대통령의 대북송금 의혹 관련 대국민 담화에 배석해 “현대상선의 요청을 받아 2억 달러 환전 편의만 제공했다”고 밝혔었다.

白씨는 특히 “국정원을 통해서 (송금 관련)업무 협의를 하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라면서 “국정원법상 해외로 달러를 반출해도 용처를 물을 수 없기 때문에 국정원을 이용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林전원장의 대국민 해명이 송금을 주도했던 국정원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것이었는지 ▶외환은행에 국정원이 직접 관리하는 계좌가 있는지 등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송금된 돈을 받은 북한측의 신원과 관련해 白씨는 “마카오에 있는 북한 단체 계좌로 보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면서 “수취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白씨는 신원 불명으로 알려져온 대북 송금 계좌 입금 수표의 배서인 6명과 관련,“그 사람들에 대해선 감사원(제출)자료에 포함돼 있어 감사원도 이들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실무자였기 때문에 임동원(林東源)당시 국정원장 등이 협의했는지는 모른다”고 덧붙였다.

한편,특검팀은 白씨의 진술 등으로 대북 송금이 국정원을 통해 이뤄진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금명간 김경림(金璟林) 전 외환은행장 등을 소환,林전원장 등으로부터 당시 송금 편의 제공을 요청받았는지 여부
를 조사할 방침이다.

특검팀은 또 국정원 관계자 등으로 알려진 송금 수표 배서인 6명도 조만간 불러 당시 송금 경위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

강주안·이수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