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의 향연…피카소 동판화전|30일까지 진화랑서 30여점 선보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나부들의 향연.
「피카소」의 동판화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전시장 안은 마치 한 무리의 발가벗은 여인들이 펼치는 향연의 현장 같은 느낌을 준다 (30일까지 진화랑).
때론 요염하게, 때론 슬픈 표정으로 조금은 수줍고 조금은 대담하게 자신의 몸을 열어 보이는 이 그림들에서 희로애락으로 점철한 생의 본질적 의미가 물씬 풍겨난다.
다양성의 천재 「파블로·피카소」가 판화에 첫 손을 댄 것은 1899년 바르셀로나에서부터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가 생전에 제작한 판화는 8천여점. 다색 석판화·리놀륨 판화 등도 있으나 주종은 흑백 동판화다.
이번에 선보이는 30여점의 작품들 역시 흑백 동판화로 그의 판화 예술의 정점으로 꼽히는『에로이카』 (68년 작·3백47점으로 이뤄진 연작 동판화)가 탄생될 즈음인 66∼71년에 제작한 것들이다.
우선 눈길을 끄는 작품은 70년1월15일에 제작한 『156시리즈』의 제3번.
에칭 (동판 표면을 그라운드 액으로 덮고 그 위에 철필로 그림을 그려 초산 용액에 선을 부식시키는 기법), 드라이 포인트 (동철침 또는 다이어먼드 바늘로 직접 동판 면에 그림을 그리는 기법), 스크레퍼 (삼각형 조각도를 이용, 철필 등으로 생긴 틈을 잘라내 판면에 여러가지 해조를 만드는 기법) 등의 기법을 사용해 전면을 향해 비스듬히 누워 있는 젊은 나부 뒤로 환영처럼 떠오른 한남자의 얼굴을 묘사한 것으로 이글거리는 남자의 눈동자와 애수를 담은 여인의 눈매가 감춰진 그들의 얘기를 점치게 한다.
출품작 중 주류를 이루고 있는 『천국』 시리즈 (68년 작) 역시 「피카소」의 천국관을 단편적으로 엿보게 해주는 좋은 작품들이다.
사족 하나-하나 같이 거꾸로 찍혀 나온 제작 연월일, 판에는 거꾸로 새겨야 바로 나온다는 것을 대가가 모를리 없음에도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에서 천재 특유의 고집이 느껴진다. <홍은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