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암 유발’배상 판결에 … 월성·울진·영광 주민 소송 합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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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고리원전 인근 주민의 갑상샘(선)암 발병에는 원자력발전소 운영사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첫 판결을 계기로 인근 주민들이 대거 공동소송에 나서고 있다. 법원 판결 이후 주민·원전 측이 항소한 데 이어 공동소송이 제기되면 암 발생 원인을 놓고 공방은 더욱 치열할 전망이다.

 6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는 전국에 있는 원전 인근 주민들의 갑상선암 발병과 관련한 손해배상 소송을 위해 지난달 27일부터 공동소송인단을 모집한 결과 6일 현재 120여 명이 신청했다고 밝혔다. 기장군 장안·기장읍과 일광면 주민이 100여 명, 월성·울진·영광원전 인근 주민 20여 명 등이다.

 이들은 원전에서 반경 10㎞ 이내 거주자·근무자로 모두 갑상선암에 걸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책위는 패소할 경우 상대 변호인 비용을 물어줄 수 있다며 이를 감수할 주민만 소송에 참여시킬 계획이다. 소송 제기까지 확인 작업을 거치기로 한 것이다.

 대책위는 또 공동소송의 범위를 갑상선암에 한정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주민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5일 기장군청에서 열린 소송 설명회에서 주민들은 소송 대상 암과 지역 범위를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그동안 주민에 대한 전수조사가 한 번도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주민들은 이번 판결로 갑상선암에 걸린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주장했다.

 공동소송은 지난달 17일 부산지법 동부지원 민사2부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상대로 박모(48)씨가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박씨에게 1500만원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당시 재판부는 “박씨가 원전 6기가 있는 고리원전으로부터 10㎞ 안팎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방사선에 노출돼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만큼 피고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원전의 방사선 방출과 갑상선암의 인과 관계를 첫 인정한 판결이다.

 실제 고리원전 인근 주민들의 갑상선암 발병은 높게 나타났다. 2010년 7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서 진료받은 주민 3031명 중 갑상선암에 걸린 주민은 41명(1.35%)으로 집계됐다. 이는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와 삼성서울병원의 암 진단율 1.06%와 1.04%보다도 높은 수치다. 이에 대해 박씨 측은 “법원이 한수원의 책임을 10분의 1만 인정한 결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난 3일 항소했다. 한수원 측도 “법원 판단을 다시 받기로 했다”며 항소했다.

 최수영(44) 부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이번 판결과 공동소송에 대해 일본에서도 주목하고 있다”며 “이달 말까지로 돼있는 원전 인근 주민들을 위한 소송인 모집 기한을 연장해 연말께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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