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언론자율 빼앗은 신문고시 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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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신문고시(告示) 개정안이 진통 끝에 규제개혁위원회 경제1분과위를 통과했다. 신문협회가 그 부당함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정위원회 의도대로 신문시장에 대한 정부의 직접 개입이 가능하도록 고시가 바뀐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개정안이 규개위 전원회의를 통과하면 신문사 간 불공정 행위에 대해 신문협회가 우선 제재할 수 있는 '선 자율, 후 타율'원칙은 유명무실해진다. 대신 정부가 마음에 안 드는 신문사에 경영상 압박을 가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규개위가 정부의 지나친 간섭을 막기 위해 몇 가지 단서조항을 달아놓았지만, 법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과 규제의 주도권이 정부로 넘어감으로써 신문에 대한 정부 간섭의 길을 터준 것이다.

정부는 겉으로는 신문시장의 질서 확립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명분을 믿지 않는다. 단순히 시장질서 확립이라면 협회가 자율적 규제를 약속했으니 이의 시행을 지켜보아야 하는데 막무가내로 정부가 직접 나서려 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새 정부가 보도지침을 비롯해 근거도 불명확한 '3사 시장점유율 75%'등을 들고 나온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즉 정부의 간섭을 높임으로써 주요 신문의 비판기능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최근의 신문시장 상황은 정부가 스스로 고시를 없앴던 1999년 당시보다 나아졌다. 신문협회는 이를 통계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질서 운운하며 정부가 직접 개입하겠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신문고시의 목적은 예방과 자율에 그 목적(제1조)이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으로 두 축 중 자율의 축이 없어진 만큼 고시는 더 이상 존립의 의미가 없다. 규개위는 분과위의 결정을 바로잡든지, 아니면 고시를 아예 폐지하는 게 옳다.

김대중 정권은 신문의 입을 막으려고 세무조사, 불공정 거래 조사 등 압박을 가했지만 실패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