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사를 수직적 기준으로 평가해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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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언제부터인가 주변에서 이런 말들을 곧잘 듣게 되었다.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일류××」「일류○○」「동양 제일의…」 등 큼직하게 새로 지은 건물에 대한 것에서부터 학교에 대한 평가, 자기 자녀에 대한 자랑에 이르기까지 듣게되는 말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들을 듣다보면 이제 우리의 힘도 이렇게 커졌구나 하는 감탄과 아울러 자칫 그 일류와 첫째에 끼이지 못하면 기죽고 눈치보기 바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어느 때는 우리 둘레에서 그 흔한「일류」나「첫째」빼고 나면 남을 것이 없쟎은가 싶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우리는 「일류」나「제일」 아니면 모두 시시해하고 안심을 못하는 데까지 온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거기다가 이제는 별로 새로운 이야기도 아닐 터이지만, 주변에서 어지간한 사람 치고 무슨 「장」 아닌 사람은 어디 있는가. 불과 다섯 손가락으로 종업원수룰 헤아릴 규모의 회사에도 한둘 정도를 빼고 나면 모두 무슨 「장님」들인 것을. 우리 둘레는 역시 헤아릴 수 없는 장들로 꽉 차 있는 것 같다.
글자 그대로 장이란 장자이니 그만한 직분과 소양에 대한 대접이 「무슨 무슨장」이란 표현을 가져온 것이다. 장자들로 꽉 메워지고 둘러쳐진 주변이고 사회이니 보기에 따라서는 모든 일이 장자 사회답게 잘 이룩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와 같지 못해서 장자 대접 안받아도 좋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대개 장 좋아하는 사람 치고 장다운 사람이 드문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장 좋아하는 개인에게도 있지만 장자 붙이지 않으면 행세 못하는 우리주변 구조에 더 많이 있을 것이다.
세태에 대한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나는 그 원인이 세상이나 인간사를 지나치게 높고 낮은 관계로만 생각하고 바라보는 사고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모든 일을 평등하고 동등한 관계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것은 높은 만큼 좋고, 낮은 것은 낮은 만큼 나쁘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데에 있는 것 같다.
높은 것은 높은 만큼 행세하고 주가 되고, 낮은 것은 낮은 만큼 행세 못하고 대접 못 받고 속이 되니 그런 것이리라. 여기서 문제를 조금만 더 자세히 관찰하면 높고 낮다는 수직 관계에 가치를 두고 있는 현상보다는 수직이란 것의 기준에 더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높고 낮은, 즉 좋고 나쁘다는 기준은 질을 따지는 것이 아닌 양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곧 발견되기 때문이다. 「세계 제일의…」「일류 학교」「일등」 등을 말하는 경우 그것은 건물의 양적 규모에서, 성적의 우수에서, 성적은 점수의 다과에 의해서 일컬어지고 있는 것이다.
규모가 크다고 그것이 곧 질이 높다는 뜻일 수 없고, 성적이 많다고(?) 그것이 곧 개인의 인격이 훌륭하다는 뜻일 수 없다.
세상이나 인간사가 수지의 구조로만 된 것은 아니다. 또 설령 수직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할지라도 수평의 구조로 바꾸려는 노력이 이른바 진보가 아니었는지.
그러고 보면「장」과「일류」보다는 누구나 똑같이 자기 몫을 다하고 자기 본질을 다 드러내는 사람, 제 본질을 다해 꽃피는 봄꽃들이 아름답다, 요즈음엔.<홍신선>
▲43년생. 경기도 화성 출신. 시인. 시집 『서벽당집』 『겨울 섬』등. 현재 안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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