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1년 만의 사과 … 진실 조롱한 수능 마피아 해체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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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교육당국이 명백한 잘못을 바로잡는 데 1년이나 걸렸다. 그동안 수험생은 진로와 장래의 꿈을 접어야 했고, 학부모는 당국을 상대로 힘겨운 소송을 벌여야 했다. 어제 교육부 장관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지난해 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출제 오류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했다. 지난달 16일 평가원이 패소한 2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겠다고 했고, 이제라도 특별법을 만들어 피해 학생을 구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의 늑장 사과에 대해 만시지탄(晩時之嘆)이란 말조차 붙이기 부끄럽다. 우리는 출제 오류가 분명한 만큼 잘못을 인정하고 오류를 바로잡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입장을 밝혀왔다. 그런데도 당시 교육부와 평가원은 현실과는 정반대의 낡은 통계가 실린 교과서를 바이블이라고 우겼다. 신문과 방송의 뉴스를 통해서 새로운 통계와 정보를 습득한 학생들은 바보가 됐다. 틀린 것이 옳은 것을 이겼다. 이러고도 자라나는 세대에게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창조적 사고를 가지라고 할 수 있을까.

 수험생의 이의제기를 검토한 한국경제지리학회,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 소속 학자들도 평가원의 편을 들었다. 평가원은 힘없는 피해자들을 침묵시키기 위해 국민 혈세로 대형로펌의 변호사까지 고용해 소송전을 벌였다. 특정 학맥 중심의 평가원·교육부·학계가 똘똘 뭉친 수능 마피아가 저지른 범죄다. 1년 가까이 지난 뒤 세계지리 오답자 1만8884명에 대한 성적 재사정, 이들에 대한 대학 입학 재사정이란 혼란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수능 마피아가 원흉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피해자에 대한 신속하고도 내실 있는 구제다. 교육부는 의원입법 형식으로 특별법을 제정키로 했지만 구제 과정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오답 처리된 세계지리 점수 때문에 하향 지원한 학생까지 구제될 수 있을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교육부는 구제의 범위를 조속히 확정해 해당자에게 알려줘야 한다. 교육부와 평가원은 올해 정시모집 원서 접수가 시작되는 12월 19일까지 재사정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밝혔으나 일정을 좀 더 앞당겨야 한다. 지난해 수능 오류로 불이익을 본 학생의 상당수가 올해 입시에 재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획기적인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 출제·검토 인력을 보강해 문제의 질을 높이고, 수능 문제에 대한 이의제기 및 처리 절차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학회가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형식적으로 답을 주는 관행도 개선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허위로 진실을 가리고 조롱한 수능 마피아의 전모를 밝히고 해체해야 가능한 조치들이다. 문명사회의 상식을 파괴한 수능 마피아의 범죄를 적당히 넘겨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