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순과 자리 잘 찾은『꽃 세편』…운율·결구 뛰어나-『소록도』는 서정성 잃지 않고 삶의 현장을 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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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투과되는 작품의 편수도 많아지고 수준도 높아져서 여덟 편을 가려내는 데도 선자의 눈길이 몇 번씩 거듭 오간다.
여기서 우리 겨레의 시인 시조의 앞날이 밝게 트여음을 볼 수 있고 우리겨레가 세계의 어느 민족에도 앞서는 타고난 시의 계레임도 다시 학인 할 수 있다.
더욱 많은 참여와 끊이지 않는 작품생산을 부탁드린다. 『꽃세편』은 시조의 운율과 결구에 무리하지 않는 비범을 보이고 있다. 시조의 경우 말(언어)을 놓는 순서와 자리를 가릴 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을 안다는 것은 이미 시조의 문에 들어섰음을 뜻한다.
『소록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특정한 삶의 현장을 시인의 가슴으로 담아서 의지와 희망을 내뿜고 있다. 이런 긍정적인 작품에서 서정성을 잃지 않고 있는 것도 이 시의 좋은 점이다.
『노인』은 직숙적이기 보다 상징과 은유를 더 많이 쓰고 있다. 그 때문에 생활의 짙은 체취가 적고 관념 속에서 시상을 만나게 된다. 감동도주고 기술도 높은 시룰 쓰기란 이래서 어렵다.
『별리』는 지나치게 자신의 재능을 믿은 나머지 시를 평범한 넋두리에 빠뜨리고 있다. 시를 알아듣기 쉽게 쓰기 위해서는 시인이 더 많은 진통을 겪어야 알텐데 쉬운 시를 쉽게 써서는 시룰 쓸 까닭이 없다.
『사순절』은 매우 정직한 시다. 시가 정직하지 않고 가 어디 있을까마는 이 경우 분명히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정성을 다해 쏟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수 종장은 시조의 율격에 잘 맞지 앉고 있음을 지적해둔다.
『단형 일수』. 지금까지 시인들이 무수히 노래한<바위><사슴>울 노래하고 있으나 새로운 낱말은 한 귀절도 없다. 표절이거나 모작은 아니더라도 남의 뒤를 쫓는 일은 진정한 창작일 수 없다. 『진달래 꽃』에서는 <비껴서는 산그늘>과 <메아리로 남는다>가 이 시를 크게 살리고 있다. 시에 있어서 한 구가 갖는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읽을 수 있으리라. 『시선』은 구체적 대상물(오브체)가 아닌 한 순간의 상태를 끊어내어 언어로 표현해본 작품이다. 시인의 의식이 타인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말의 조준을 정확하게 해야한다. <이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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